로열 커피 콤사 컬렉션, 원산지 뒤에 농부의 이름을 놓다

산지 이름 뒤에 세 농부의 이름이 이어진다. 미국 생두 수입사 로열 커피(Royal Coffee)가 10월 27일 온두라스 생산자 조직 콤사(COMSA)의 새 마이크로랏 컬렉션을 소개했다. 그라시아 페냘바, 비르힐리오 플로레스, 아르놀도 모랄레스. 같은 조직을 거쳐 수출되는 커피지만 상품명에는 각 생산자와 농장 이름이 함께 붙는다. 상품에 기재된 수확기는 그라시아가 1~3월, 나머지 두 생산자가 12~3월이다. 가을에 소개됐다고 가을에 막 수확한 커피라는 뜻은 아니다. 이번 소식은 카페에서 바로 마실 수 있는 신메뉴의 등장이 아니라, 로스터가 구입할 생두를 누구의 작업으로 소개할 것인가에 관한 이야기다.
로열 커피가 밝힌 선별 방식부터 흥미롭다. 일정한 맛의 구성을 미리 정하고 그에 맞춰 계약하는 방식이 아니라, 수확과 가공을 마친 뒤 샘플을 평가해 개별 물량을 고른다. 생산자가 만든 결과를 먼저 놓고 구매를 결정하는 셈이다. 그러니 이 컬렉션의 주인공을 이해하려면 ‘온두라스산’이라는 표기에서 한 걸음 더 들어가야 한다. 품종과 농장 위치, 수확한 열매를 다루는 작업이 각각의 상품에 남아 있다.
그라시아의 라 페를라 아술 농장은 마르칼라의 엘 린콘에 있다. 상품 자료에 적힌 재배 고도는 1,300m, 품종은 파라이네마다. 가족 농장 안에서 자신의 구획을 관리하는 그는 콤사에서 배운 재배 방식을 적용한다. 로열 커피는 열매의 당도를 측정하고 손으로 고른 다음 물에 띄워 밀도가 낮거나 손상된 것을 가려내는 작업을 소개한다. 익은 열매를 따는 것으로 일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 수확한 뒤에도 다시 고르는 손길이 이어지는 것이다.
이후 건조된 커피는 콤사의 창고와 가공 시설로 옮겨져 수출 준비를 거친다. 로열 커피의 설명에는 탈곡과 밀도·색상에 따른 분류, 출하 전 품질 평가가 포함돼 있다. 농부의 이름을 앞세웠다고 해서 유통 과정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개별 농장의 물량이 어떤 경로를 지나왔는지 설명할 수 있을 때, 긴 상품명이 단순한 장식보다 많은 일을 하게 된다.
비르힐리오의 부에나 비스타 농장은 코마야과의 콘셉시온 델 오르노에 자리한다. 현재 판매 중인 MP-13 물량에는 카티모르와 렘피라, 파라이네마 세 품종이 기재돼 있다. 고도는 1,850m로, 그라시아의 농장과도 다르다. 두 상품에 모두 ‘워시드’라는 가공 분류가 붙어 있지만, 그 한 단어로 재배 조건까지 같아지는 것은 아니다. 산지명과 가공명만으로 커피를 묶어 읽을 때 빠지기 쉬운 정보가 여기 있다.
비르힐리오의 가공 기록은 수확한 열매를 손으로 선별하고 물에 띄워 골라낸 뒤, 과육 제거와 발효, 세척을 거쳐 높은 건조대에서 말리는 과정을 담는다. 건조 기간은 최대 15일로 소개한다. 그는 약 27에이커 농장을 운영하며 콤사에서 배운 방식에 커피를 재배해 온 친척들의 경험을 더해 왔다. 상품 페이지에 나란히 놓인 숫자와 작업 기록을 읽다 보면, 마이크로랏은 단지 적은 양을 뜻하는 말이 아니라 특정 생산자의 선택을 따라갈 단위로도 읽힌다.
아르놀도의 로스 투카네스 베르데스는 다른 출발점을 보여준다. 그는 2013년 아버지에게서 농지 일부를 물려받고 이듬해 콤사에 합류했다. 2015년에는 농장을 자주 찾던 초록빛 큰부리새에서 이름을 가져왔다. 이번에 소개된 물량은 파라이네마와 이카투를 함께 담은 내추럴 가공 커피다. 재배지는 마르칼라의 라스 필라스, 고도는 1,378m다. 상품명에 붙은 농장 이름은 생산 이력과 장소를 연결하는 짧은 표식이 된다.
이 농장의 이전 세대에는 커피 녹병으로 재배지를 잃은 경험이 있다. 로열 커피의 생산자 소개에 따르면 아르놀도의 아버지는 2009년 농장을 잃었고, 재건한 뒤 아들에게 땅 일부를 건넸다. 이후 아르놀도는 워시드와 내추럴, 허니 가공을 시도했다. 큰부리새에서 가져온 농장 이름 옆에 놓이는 것은 이처럼 땅을 이어받아 다시 재배하고 방법을 익혀 간 이력이다. 생산자 이름을 읽는 일은 품종 목록만으로는 보이지 않는 시간을 읽는 일이기도 하다.
세 사람의 기록에 콤사의 교육 활동이 거듭 등장하는 점도 눈에 띈다. 로열 커피는 콤사의 시범 농장 라 포르탈레사에서 커피 재배 부산물을 활용한 재배 자재와 방법을 시험하고, 그 결과를 생산자들에게 나눈다고 설명한다. 농장별로 분리된 상품을 만드는 바탕에 공동의 배움이 놓여 있는 셈이다. 비르힐리오가 친척에게 물려받은 경험과 콤사에서 익힌 방식을 함께 활용하는 사례도 이 관계를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개인의 이름과 공동 조직의 이름은 서로를 지우지 않는다.
세 농장의 품종과 위치, 가공 조건이 함께 달라지는 만큼, 이를 가공법 하나의 효과를 비교하는 실험처럼 읽을 수는 없다. 대신 상품에 붙은 기록은 로스터가 무엇을 비교해 볼지 정하는 출발점이 된다. 수입사가 제시한 향미 표현을 확인하는 것에 더해, 그 물량의 농장과 품종을 함께 기억할 수 있다. 한 봉지의 커피를 설명할 때 맛의 인상과 생산 이력이 각각 다른 정보를 전한다는 점이 중요하다.
현재 세 상품은 미국 오클랜드 창고의 현물 생두로 포대당 153파운드이며, 한국 소매 원두 출시와 국내 판매처는 확인되지 않았다. 이번 소개가 직접 겨냥하는 독자는 로스터다. 소비자에게는 카페나 로스터리에서 원산지 설명을 읽을 때 살펴볼 정보가 늘어난다. 이름이 길어졌다는 사실 자체보다, 그 이름을 따라 생산지와 작업 기록까지 연결되는지가 눈여겨볼 부분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