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네스북은 왜 맥주회사가 만들었을까? 술자리 논쟁에서 시작된 기록책

그런데 맥주회사가 왜 세계기록을 정리한 책을 만들었을까.
시작은 거창한 기록 사업이 아니라, 사냥 모임에서 끝내 결론을 내지 못한 말다툼 하나였다.
1950년대 초 아일랜드 웩스퍼드주의 한 사냥 모임에서 사람들이 이런 문제를 두고 논쟁을 벌였다.
“유럽에서 가장 빠른 사냥새는 무엇일까?”
그 자리에는 기네스 양조장의 전무이사였던 휴 비버(Hugh Beaver)도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이야기를 나눠도 결론이 나오지 않았다. 당시 가지고 있던 참고서를 찾아봐도 원하는 답을 쉽게 확인할 수 없었다.

그때 비버는 다른 생각을 했다.
이런 논쟁은 이곳에서만 벌어지는 것이 아닐 것이다. 사람들이 모이는 술집에서도 가장 빠른 새, 가장 큰 동물, 가장 높은 산처럼 사실 하나를 두고 계속 논쟁할 테고, 그때 바로 답을 찾아볼 수 있는 책이 있다면 어떨까.
훗날 ‘기네스북’으로 불리게 될 책의 시작이었다.

술집의 질문에 답하는 책
처음부터 세계기록 인증기관을 만들겠다는 계획은 아니었다.
핵심은 사람들이 술집에서 실제로 궁금해할 만한 사실과 기록을 한 권에 모으는 것이었다.
비버는 아이디어를 구체화하면서 조사와 사실 확인에 능했던 노리스 맥휘터(Norris McWhirter)와 로스 맥휘터(Ross McWhirter) 형제에게 편찬을 맡겼다.
1954년 작업이 시작됐고, 맥휘터 형제는 방대한 자료를 조사하고 정리했다. 공식 기록에 따르면 초판을 만드는 과정에는 약 13주 반이 걸렸다.
그리고 1955년 첫 《Guinness Book of Records》가 발행됐다.
사냥 모임에서 답을 찾지 못했던 질문 하나가 수많은 ‘가장 빠른 것’, ‘가장 큰 것’, ‘가장 오래된 것’을 모은 책으로 확장된 것이다.
맥주 대신 ‘대화거리’를 만들었다

이 이야기가 지금 다시 흥미로운 이유는 기네스가 선택한 홍보 방식에도 있다.
맥주의 맛이나 제조법을 설명하는 책을 만든 것이 아니었다.
대신 사람들이 맥주를 마시는 공간에서 실제로 벌어지는 행동을 관찰했다. 사람들이 모이면 이야기를 하고, 사실을 두고 다투고, 누가 맞는지 확인하고 싶어 한다는 점이었다.
기네스는 그 대화에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는 쪽을 택했다.
지금의 표현으로 바꾸면 제품을 직접 광고하기보다 사람들이 찾아볼 만한 ‘콘텐츠’를 먼저 만든 셈이다.
결과적으로 그 책은 맥주 브랜드의 이름을 달고 출발했지만 점차 기네스맥주보다 ‘세계기록’ 자체로 인식되는 브랜드가 됐다.
책 한 권은 세계기록 브랜드가 됐다

《Guinness Book of Records》는 이후 베스트셀러로 성장했다.
기록을 모아 책으로 출판하는 데서 끝나지 않고, 세계 곳곳의 기록 도전을 직접 확인하고 인증하는 체계로 영역을 넓혔다.
책과 방송, 공식 기록 심사, 온라인과 SNS까지 형식도 달라졌다.
현재 우리가 ‘기네스 세계기록’이라고 하면 누군가가 새로운 기록에 도전하고 심사위원이 이를 확인하는 모습을 먼저 떠올리지만, 출발점에는 훨씬 작은 질문이 있었다.
“그래서 가장 빠른 새가 대체 뭐야?”
그런데 정작 그 질문은 책에서도 풀리지 않았다

아이러니한 부분도 있다.
기네스월드레코드의 공식 역사에 따르면 첫 책은 세계기록을 중심으로 편찬됐고, 책을 만들게 된 계기였던 원래의 새 논쟁에 대한 답은 초판에서 직접 다루지 않았다.
당시 사냥 모임에서 정확히 어떤 새들을 놓고 논쟁했는지도 기록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있다.
기네스월드레코드는 현재 당시 질문의 답으로 붉은가슴비오리(red-breasted merganser)가 가장 유력하다고 설명한다.
결국 술자리 논쟁 하나를 끝내기 위해 시작한 책은 정작 그 논쟁의 결론을 싣지 못했다.
대신 그보다 훨씬 더 많은 논쟁에 답하는 책이 됐다.
2025년 첫 책 발행 70주년을 맞아 기네스월드레코드는 다시 아일랜드의 시작점을 찾아 이 역사를 되짚었다. 한 번의 사냥 모임에서 시작된 질문은 70년 뒤에도 세계 곳곳에서 새로운 기록을 찾는 브랜드의 출발점으로 남아 있다.

1955년 첫 기네스북은 지금의 영상형 기록 콘텐츠와 달랐다
1955년 등장한 첫 《Guinness Book of Records》는 오늘날 온라인에서 널리 공유되는 기상천외한 도전 영상 모음집과 성격이 달랐다. 당시에는 인터넷으로 사실을 찾아볼 수 없었기 때문에 기록의 크기와 높이, 속도를 비교하려면 여러 분야의 참고서를 조사해야 했다. 맥휘터 형제는 이런 정보를 한 권으로 정리하는 일을 맡았고 약 13주 반 동안 집중적으로 편찬했다고 공식 역사에서 설명한다. 첫 책은 약 198쪽으로 구성됐으며 자연과 인간, 과학, 건축과 스포츠 등 여러 영역의 기록을 담았다. 출발점이 술자리의 논쟁이었어도 내용은 특정한 맥주에 관한 정보보다 넓은 범위의 사실을 다루었다.
왜 맥주 브랜드는 제품 설명 대신 기록책을 선택했을까
휴 비버가 떠올린 발상은 사람들이 모여 대화를 나누는 장소에서 자연스럽게 쓰일 만한 참고자료를 제공하는 것이었다. 술집에서 맥주를 마시는 사람은 특정 브랜드의 원료와 제조 공정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사냥과 스포츠, 여행, 주변에서 들은 흥미로운 사실을 두고 서로 의견을 나눈다. 이때 누구나 찾아볼 수 있는 기록책이 있다면 일상의 대화에 도움을 줄 수 있다. 단순히 맥주의 상품명을 광고하는 대신 사람들이 반복해 펼쳐볼 수 있는 책을 만든 셈이다. 다만 이 전략이 처음부터 오늘날처럼 세계적인 인증 사업을 완벽하게 예측했다는 뜻은 아니다. 하나의 실용적인 아이디어가 시간이 지나며 독자적인 브랜드로 자라났다고 이해하는 편이 정확하다.
사냥 모임의 새에 관한 논쟁은 왜 답을 찾기 어려웠나
이야기의 출발점으로 알려진 질문은 유럽에서 가장 빠르게 나는 사냥새가 무엇이냐는 것이었다. 하지만 새의 속도는 측정한 상황과 비행 방식에 따라 달라진다. 수평 비행의 속도를 말하는지, 하강하며 내는 최고 속도를 말하는지에 따라 비교 대상이 달라질 수 있다. 따라서 단순히 어떤 새 이름 하나를 말하는 것만으로 모든 논쟁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기네스월드레코드는 지금 이 역사적 질문을 설명하면서 붉은가슴비오리를 언급한다. 그럼에도 처음 논쟁이 벌어진 당시에는 신뢰할 수 있는 수치를 쉽게 찾을 수 없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기록을 만들고 검증하는 일이 왜 필요한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례다.
한 해에 한 번 나오는 책과 수시로 바뀌는 기록의 차이
기네스북은 책의 형태로 처음 알려졌지만 오늘날 세계기록 인증은 한 권의 책보다 더 빠른 속도로 변한다. 새로운 기록 도전이 접수되고 정해진 기준에 따라 검증된 뒤 기존 기록이 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연간 발행되는 종이책에는 편집과 인쇄 시점의 기록이 담기는 반면 온라인 기록은 그 후에도 갱신될 수 있다. 따라서 오래된 기네스북에 등장한 세계 최고 기록이 지금도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고 단정할 수 없다. 특정 기록의 현황이 궁금한 사람은 공식 데이터베이스에서 확인 날짜와 측정 조건까지 살펴보는 편이 정확하다.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도 유명한 과거 기록을 소개하면서 당시의 기록이라는 설명을 붙이는 것이 좋다.
세계기록이라는 이름에 필요한 것은 놀라움보다 검증이다
기네스월드레코드에서 다루는 분야는 키와 길이, 시간처럼 비교 기준이 분명한 수치부터 독특한 도전 형태까지 매우 넓다. 그렇다고 누군가 인터넷에 영상을 올리고 세계 최고라고 주장한 사실만으로 공식 기록이 되는 것은 아니다. 어떤 조건에서 측정했는지와 도전 과정을 어떻게 확인했는지에 따라 인증 여부가 달라진다. 이 점은 처음 기록책을 만들었던 목적과 연결된다. 서로 다른 사람이 같은 질문을 놓고 논쟁할 때 각자의 기억이나 추측 대신 비교할 수 있는 근거를 제공하려 했기 때문이다. 세계기록을 읽는 재미는 숫자가 크거나 장면이 신기하다는 사실뿐 아니라 그 숫자를 어떤 기준으로 검증했는지 알아가는 데에도 있다.
처음의 질문을 오늘 다시 묻는다면
기네스북의 출발점이 된 ‘가장 빠른 사냥새’라는 물음은 단순한 잡학 문제처럼 보이지만, 사실 좋은 기록에는 먼저 명확한 질문이 필요하다는 점을 보여준다. 새의 속도를 비교한다면 수평 비행인지 급강하인지, 순간 최고 속도인지 일정 시간 유지한 속도인지를 정해야 공정하다. 공식 기록에서 붉은가슴비오리가 유력한 답으로 제시되는 것도 측정 조건과 기록 자료를 함께 살펴볼 때 의미가 있다. 기네스월드레코드 공식 자료는 첫 책이 유럽에서 가장 빠른 사냥새라는 당초의 지역적 질문에 직접 답하지 않았다고 설명한다. 세계 최고 기록을 모으는 책의 편집 범위와 사냥 모임에서 나온 질문의 범위가 서로 달랐기 때문이다.
기네스북을 브랜드 콘텐츠의 사례로 볼 때도 ‘돈을 벌기 위한 광고책’이라는 한 문장으로 끝내기보다 이후 변화를 구분할 필요가 있다. 초기에는 사람들이 모이는 공간에서 대화를 돕는 실용적인 참고자료였고, 인기가 높아지면서 독립적인 출판물의 성격이 강해졌다. 오늘날에는 기록 자체를 심사하고 인증하는 사업으로 더 넓어졌다. 하나의 아이디어가 여러 시대의 기술과 매체에 맞게 모습을 바꾸었다는 뜻이다. 다만 공식 인증 기록과 개인이 온라인에 올린 도전 영상은 같은 것이 아니다. 숫자가 놀라워 보이는지를 넘어서 어떤 방식으로 측정하고 누가 검증했는지를 묻는 태도가 지금의 기록 콘텐츠를 읽는 데에도 필요하다.
출처 및 참고자료
Guinness World Records — Our Story
https://www.guinnessworldrecords.com/about-us/our-story
Guinness World Records — Why was the Guinness World Records book first published?
https://www.guinnessworldrecords.com/news/2022/9/why-was-the-guinness-world-records-book-first-published-714607
Guinness World Records — 2025년 아일랜드 창립 장소 재방문 기록
https://www.guinnessworldrecords.com/news/2025/8/inside-gwr-editor-craig-glendays-pilgrimage-to-ireland-as-he-relives-books-origin-story
Guinness World Records — Book Cover Archive
https://www.guinnessworldrecords.com/products/books/history-of-the-book/book-cover-archiv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