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남준의 1964년 로봇과 2026년 AI 로봇이 광주에서 만난다

ACT 페스티벌 2026 — 아이, 휴먼: 테크네세에 응답하기

광주 국립아시아문화전당(ACC)에 소개되는 백남준의 《로봇 K-456》에는 연도가 두 개 붙는다. 1964(1996)이다. 1964년은 작품이 처음 만들어진 해이고, 이번 전시 물체는 같은 설계도로 1996년에 제작한 백남준아트센터 소장본이라고 ACC는 설명한다. ‘1964년 로봇이 광주에 온다’는 말만으로는 작품의 역사와 눈앞 물체의 제작 시기가 한데 섞인다.

《ACT 페스티벌 2026 — 아이, 휴먼: 테크네세에 응답하기》는 이 작품과 노진아의 《네르바 아티피시아》를 함께 소개한다. 둘을 옛 로봇과 최신 AI의 대결로만 읽기 전에 구분할 것이 하나 더 있다. 역사 영상에서 움직이는 로봇, 지금 전시된 물체, 관객의 입력에 반응하도록 설계한 작품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작동 정보를 전달한다. 공개된 전시 설명과 아카이브를 이 세 층으로 나눠 읽어 봤다.

1964년의 설계와 1996년의 물체

ACC 웹진은 1964년 제작본이 미국 글렌스톤 미술관에 있으며, 이번 전시는 1996년 제작본을 소개한다고 명시한다. 따라서 1960년대 거리 퍼포먼스의 모든 흔적이 이번 전시 물체에 그대로 남아 있다고 추정할 수는 없다. 같은 작품명과 설계의 계보가 물체 하나의 연속된 이력을 자동으로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이 구별은 작품의 가치를 가르는 등급표가 아니다. 백남준의 로봇이라는 개념이 언제 등장했는지와 이 물체가 언제 만들어졌는지에 각각 답하는 방법이다. 작품명, 최초 연도, 버전의 제작 연도, 소장기관을 따로 읽으면 설명판의 괄호가 무엇을 보완하는지 이해할 수 있다. 전시장의 물체만으로 역사적 사건을 모두 직접 목격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도 함께 분명해진다.

움직이는 로봇과 움직임을 보여주는 영상은 다르다

스미스소니언 미국미술관의 백남준 아카이브는 K-456을 아베 슈야가 개발한 원격 조종 장치를 활용한 로봇으로 설명한다. 1982년 휘트니미술관 앞의 자동차 사고도 즉흥 퍼포먼스의 맥락에서 제시한다. 기계가 독립적으로 상황을 이해해 사고를 일으켰다는 뜻이 아니다. 어떤 장치가 몸을 움직이고 누가 그 장치를 다뤘는지부터 구분해야 한다.

ACC 전시 설명은 역사적인 걷기와 사고 장면을 발췌 영상으로 함께 보여준다고 안내한다. 특히 전시장에 정지해 있는 로봇에 영상이 과거의 움직이던 시간을 더한다는 설명이 있다. 이 문장을 읽으면 K-456이 이번 전시장에서도 관객 앞을 걸어 다닐 것이라는 기대를 유보하게 된다. 과거에 수행한 기능과 현재 전시의 실연 여부는 별개다.

따라서 관람자는 두 가지 증거를 만나게 된다. 물체에서는 제작된 몸을 보고, 기록 영상에서는 특정 시점의 행동을 본다. 영상을 보았다는 사실을 현재 전시본의 작동 시험으로 바꿔 말할 수 없다. 이는 옛 기술이 부족하다는 평가가 아니라, 전시가 물체와 시간을 서로 다른 매체에 나눠 전달한다는 구분이다.

목소리에 대답하는 신작에서는 무엇을 확인할 수 있을까

《네르바 아티피시아》의 공식 매체 설명에는 음성 인식과 AI 대화 시스템이 포함된다. 여기서는 관객이 말을 건다는 입력과 작품이 답한다는 출력의 연결을 기획 단계에서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설명만으로 모든 질문을 이해하는지, 답변이 얼마나 정확한지, 반응 속도가 어느 정도인지까지 알 수는 없다. 그런 평가는 실제 작동의 관찰 기록이 필요하다.

K-456과 나란히 놓으면 질문이 더 구체적이 된다. 원격 조종 명령을 받아 몸을 움직이는 장치와 음성을 입력받아 대화 출력을 만드는 장치는 서로 다른 연결을 사용한다. 그렇다고 전자는 사람이 관여하고 후자는 사람이 사라진 장치라고 말할 수는 없다. 대화 시스템에도 작가가 정한 구성과 작동 범위가 있고, 실제 제약은 별도로 확인해야 한다.

관객 참여가 과거에는 없고 이제야 생겼다는 설명도 성립하기 어렵다. K-456은 이미 거리와 퍼포먼스 속에서 사람들과 만났다. 달라진 것은 관객의 존재 유무만이 아니라 어느 행동이 작품의 입력 경로에 직접 들어가도록 설계됐는가다. 길에서 마주친다는 관계와 말을 걸어 응답을 유도한다는 관계를 구별하면 단선적인 기술 진보 이야기보다 정확한 비교가 된다.

사람의 형태보다 입력을 기준으로 보면 다른 작품도 연결된다

정혜련의 《슈냐타로부터》 설명에는 관객이 센서에 숨을 불어넣는 과정이 나온다. 시스템은 이산화탄소 농도의 변화를 감지하고 영상과 장치의 변화를 일으키도록 설계됐다. 사람의 몸과 닮았는지보다 어떤 신호를 읽는지에 주목하면, 목소리와 호흡은 서로 다른 입력이라는 점이 드러난다. 숨이 들어갔다는 사실은 말의 의미를 이해했다는 뜻이 아니다.

세 경우를 비교할 때 쓸 기준은 입력의 종류, 그 입력을 처리하는 경로, 관객이 확인할 수 있는 출력이다. 원격 조종, 음성 인식, 센서 감지는 이 항목들에서 갈라진다. 단순히 모두 AI 또는 로봇이라고 부르면 작품마다 다르게 설계한 연결이 가려진다. 이 비교는 공식 작동 설명을 재구성한 관람 기준이며, 응답 품질이나 관객 감정의 변화를 측정한 실험은 아니다.

무료 전시와 별도 신청 프로그램도 나눠 본다

공식 안내에 따르면 주요 전시는 2026년 10월 23일부터 11월 8일까지 ACC 문화창조원 복합전시 3·4관에서 열린다. 월요일은 휴관하고 일반 운영 시간은 10~18시, 수요일과 토요일은 20시까지다. 전시는 무료지만 공연·다이얼로그·일부 XR 체험에는 별도 신청 항목이 있다. 무료라는 단어만으로 모든 프로그램을 예약 없이 이용할 수 있다고 해석하지 않아야 한다.

이 글의 확인 기준은 개막 전날인 10월 22일의 공개 문서다. 실제 관람이나 현장 작동 시험을 수행하지 않았다. 전시장에서 로봇을 만난다면 먼저 설명판의 제작 연도와 버전을 읽고, 지금 보는 동작이 실연인지 기록 영상인지 확인해 보자. 그다음 무엇이 입력되고 무엇이 반응하는지를 살피면, 작품이 얼마나 사람을 닮았는가와는 다른 질문이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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