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가 끝난 뒤, 회전 도서관의 책들은 어디로 갈까

에스 데블린의 무한 도서관에는 전시장 밖으로 나갈 책들이 있다. 런던 디자인뮤지엄은 2026년 9월 29일 발표에서 펭귄랜덤하우스 UK가 제공한 다수의 책을 전시 종료 뒤 지역 학교와 자선단체에 기부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회전하는 거대한 책장을 만드는 데 쓰인 물건이, 이후에는 다른 사람의 독서를 위한 책으로 옮겨가는 계획이다.
작품의 이름은 ‘An Infinite Library’다. 2026년 10월 2일 시작해 2027년 4월 4일까지 열리는 《Es Devlin: Other Worlds》의 마지막 방을 채운다. 앞서 밀라노에 설치됐던 ‘Library of Light’와는 다른, 디자인뮤지엄의 새 커미션이다. 이번 작품을 읽는 실마리는 도서관이라는 이름만큼이나 책들이 잠시 맡고 있는 역할에 있다.
색으로 모인 책, 빛으로 읽는 문장
디자인뮤지엄의 작품 해설에 따르면 2,000권이 넘는 책이 폭 8m의 삼각형 책장에 놓이고, 책장은 원형 거울 위에서 회전한다. 한쪽에는 책등이 색에 따라 정렬돼 있다. 다른 쪽에서는 책들이 데블린이 고른 발췌문을 투사하는 표면이 된다. 책의 겉과 속이 서로 다른 방식으로 전시에 등장하는 셈이다.
책등은 하나의 색면이 된다
색을 따라 책을 놓으면 소설과 과학서처럼 내용이 다른 책도 이웃할 수 있다. 한 권의 제목을 찾는 눈과 여러 권이 만든 색의 흐름을 보는 눈이 다른 순서로 움직인다. 책은 읽을 내용을 담은 개별 물건인 동시에, 멀리서 볼 때는 큰 형태를 채우는 작은 조각이 된다.
삼각형 책장과 원형 거울의 조합은 그 집합을 한 장면에 고정하지 않는다. 회전은 바라보는 면을 바꾸고, 거울은 책장의 실물과 반사된 모습을 함께 놓는다. 이 작품에서 ‘무한’이라는 이름은 책의 권수가 무한하다는 설명보다, 같은 책들을 다른 방향과 모습으로 계속 보게 하는 장치와 연결해 읽을 만하다.
문장은 목소리와 빛을 얻는다
보도자료는 데블린이 직접 고른 구절을 읽는 목소리와 프로젝션이 설치에 더해진다고 설명한다. 발췌된 문장이 공간 안에서 들리고 보이는 구성이다. 책을 펼쳐 앞뒤 문장을 따라 읽는 것과는 다른 방식이다. 어느 대목을 고르고 어떤 목소리로 읽는지가 책들의 외형만큼 중요한 재료가 된다.
여기서 관객에게 전해지는 것은 한 권의 전체 내용과 같지 않다. 발췌는 작가가 읽고 남긴 선택을 드러낸다. 색으로 묶인 책들이 거대한 표면을 이룬다면, 선택된 문장은 그 표면 안에 서로 다른 생각이 들어 있음을 다시 환기한다. 책을 오직 장식 재료로 보는 해석도, 보통의 열람실과 같은 곳으로 보는 해석도 이 두 층을 충분히 설명하지 못한다.
같은 제목과 같은 한 권은 다르다
9월 보도자료는 책 가운데 데블린의 작업실 서가에서 가져온, 손때 묻은 소장본이 있다고 설명한다. 제임스 글릭의 《Chaos》와 토니 모리슨의 《Beloved》도 포함된다. 목록이 작가가 접한 생각을 보여준다면, 오래 읽은 실물에는 책을 곁에 두었던 시간이 남는다.
이 차이는 책들의 다음 목적지와도 관련된다. 9월 발표의 기부 계획은 출판사가 제공한 책들에 관한 것으로, 작가 소장본을 포함한 전량의 기부가 확인된 것은 아니다. 개별 수령 학교·단체와 정확한 전달일도 해당 자료에는 명시되지 않았다.
따라서 기부를 작품 전체의 이전이라고 부르기는 어렵다. 책이 새 독자에게 가는 것과, 회전하는 책장·거울·투사 영상이 이루던 설치가 다른 장소에 보존되는 것은 별개의 일이다. 전시를 구성한 책들의 묶음이 풀리더라도, 각 책에 담긴 글은 다른 읽기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 남겨야 할 것이 전시의 모양인지, 책의 다음 쓰임인지에 따라 ‘전시 이후’의 질문도 달라진다.
전시의 끝과 독서의 시작 사이
이번 도서 지원은 영국의 ‘2026 국가 독서의 해’와 연결돼 있다. 영국 교육부와 내셔널 리터러시 트러스트가 추진하는 이 캠페인은 사람들이 이미 좋아하는 관심사에서 읽을거리를 찾도록 권한다. 디자인뮤지엄 전시 페이지에 실린 출판사 소개도 책에 접근할 기회, 스스로 고를 수 있는 선택, 전시가 끝난 뒤에도 책을 즐기고 나누는 일을 강조한다.
그 취지로 보면 기부 뒤에는 전시 안에서와 다른 선택이 가능해진다. 전시장에서는 데블린이 고른 책과 구절을 함께 보지만, 책을 받은 사람은 자신이 궁금한 대목을 찾아 읽을 수 있다. 작가의 독서 목록을 보여주는 전시와 새 독자의 독서를 돕는 기부는 이어져 있으면서도, 누가 선택하는지를 달리한다.
다만 2026년 10월 25일 현재 이것은 전시가 끝난 뒤 실행할 계획이다. 기부가 독서로 이어졌는지 평가하려면 책이 실제 어디에 전달되고 어떻게 쓰였는지까지 알아야 한다. 지금 확인할 수 있는 의미는 거대한 설치를 오래 남기는 일뿐 아니라, 그 안에 잠시 모인 책들이 다시 읽힐 경로도 함께 마련했다는 데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