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는 초상화가 아니다? 베르메르가 그린 얼굴의 정체

초상화가 아니다?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의 어두운 배경은 얼굴을 밝게 드러내는 빈 공간처럼 보인다. 그래서 소녀가 어느 방에 있는지보다 표정과 귀걸이에 눈이 간다. 그런데 마우리츠하위스의 과학 조사는 배경에 주름진 천을 시사하는 흔적이 있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그림을 소개할 때 ‘아무것도 없는 검은 배경’이라는 문장은 어디까지 고쳐야 할까.

답을 찾으려고 2019년 발표된 배경 연구의 도판 5와 6을 비교했다. 도판 번호가 같은 대상을 가리키는지, 각 사진과 지도가 무엇을 기록하는지, 연구자의 결론이 관찰에서 얼마나 나아가는지를 나눠 읽었다. 새로운 안료 분석을 한 것이 아니라 공개된 연구와 도판을 대조한 것이다. 이 구분을 지키면 발견을 과장하지 않으면서 작품을 보는 설명도 수정할 수 있다.

첫 번째 층: 현재의 사진에서 보이는 것

도판 5a는 편광을 사용해 촬영한 작품 사진이다. 오른쪽 위 배경은 어둡고, 논문이 화살표로 표시한 대각선 흔적은 주변과 강하게 대비되지 않는다. 같은 부분을 확대한 5h에서도 관람용 사진 한 장만 보고 천의 주름을 자신 있게 그려 넣기는 어렵다. 연구팀 역시 이 선들이 맨눈에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고 설명한다.

여기서 ‘없다’와 ‘뚜렷하게 보이지 않는다’는 다른 문장이다. 일반적인 이미지에서 알아보기 어렵다는 이유로 작가가 처음부터 아무 형태도 그리지 않았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반대로 화살표를 본 뒤 선을 알아봤다는 경험을, 아무 설명 없이 작품을 본 모든 관객이 같은 것을 발견한다는 증거로 쓸 수도 없다.

두 번째 층: 흑백 지도는 원래 색의 사진이 아니다

도판 5d는 거시 X선 형광 분석으로 얻은 납 분포 지도다. 5i는 그 오른쪽 위를 확대하고 대비를 높였다. 같은 위치의 대각선 변화가 편광 사진보다 분명하게 드러난다. 이를 읽을 때 중요한 것은 흑백의 밝기가 원소 신호를 나타낸다는 점이다. 밝은 곳이 원래 흰색 커튼이었다는 뜻은 아니다.

연구팀은 배경의 투명한 물감층에 소량의 연백을 섞어 오른쪽 부분의 색을 조절한 것으로 해석한다. 이는 지도에서 밝은 선을 찾았다는 관찰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시료의 재료 분석과 층위, 다른 영상의 결과가 연결된 설명이다. 이 글이 도판을 대조한 작업과 연구팀이 물질을 분석한 작업은 분명히 구별해야 한다.

같은 도판의 5e는 구리, 5f는 칼륨 분포를 보여준다. 겉으로 비슷한 흑백 그림이라고 서로 바꿔 쓸 수 없다. 어떤 영상이 무엇을 측정했는지 빠뜨리면 ‘특수 촬영을 하자 커튼 사진이 나왔다’는 부정확한 설명이 된다. 연구 도판에는 결과뿐 아니라 판독의 조건이 함께 붙어 있다.

같은 자리의 차이를 확인하는 순서

비교에서는 먼저 소녀의 터번 위쪽 끝과 화면 오른쪽 가장자리를 기준점으로 삼았다. 편광 사진의 오른쪽 위, 납 지도에서 화살표가 가리키는 오른쪽 위, 그 확대판을 차례로 확인했다. 얼굴이 밝게 보인다는 공통점보다, 인물 바깥의 같은 위치에서 어떤 대각선 차이가 남는지에 집중한 것이다.

도판 6a의 적외선 영상은 아래층 붓질의 분포를 보여주는 별도의 자료다. 연구팀은 오른쪽 배경의 변화가 윗물감층에서만 생긴 것이 아니라 아래층에서도 나타난다고 설명한다. 여러 영상이 각기 다른 층과 물질을 다루면서 같은 공간의 변화를 지시한다는 점이 중요하다. 한 장의 흑백 지도에 모든 설명을 맡기는 것보다 추론의 연결을 따라가기 쉽다.

세 번째 층: 연구팀이 제안한 천과 커튼

논문의 결론은 오른쪽 대각선 주름이 드리워진 천, 아마도 커튼을 시사한다고 쓴다. 마우리츠하위스의 대중용 연구 소개는 이를 녹색 커튼이라고 더 간명하게 설명한다. 두 표현을 대조하면 연구자가 제시한 가능성의 정도와 기관이 관객에게 전달한 요약을 구분할 수 있다.

천이라는 해석에 근거가 있다고 해서 방의 전체 모습을 복원한 것은 아니다. 창문이 어디 있었는지, 커튼의 폭과 길이가 얼마인지, 인물이 실제로 어느 장소에 앉았는지는 이 도판만으로 정해지지 않는다. 소녀가 특정 인물을 위한 초상화인지에 관한 분류 문제도 배경의 주름 한 가지로 해결되지 않는다.

녹색이라는 말로 원래 화면을 칠할 수는 없다

연구는 검은 아래층 위의 물감층에서 노란색을 내는 웰드와 청색 염료인 인디고를 확인한 기존 결과를 재검토한다. 그러나 원래의 녹색을 오늘날 화면의 특정 색상값으로 바로 바꿀 수는 없다. 층의 투명도, 아래층의 어두움, 재료의 변화가 함께 현재 모습을 만든다. 색 재료의 이름과 완성된 표면의 정확한 외관은 같은 정보가 아니다.

또한 논문은 왼쪽과 오른쪽 배경의 처리 차이를 구분한다. 오른쪽에 주름을 시사하는 변화가 있다고 배경 전체를 균일한 초록색 천으로 채우는 재현은 연구가 말한 차이를 없앨 수 있다. 이 글에서는 원색 복원 이미지를 만들지 않았고, 사진의 색을 보정해 원래 상태라고 제시하지도 않았다.

따라서 작품 설명은 ‘빈 검은 배경’을 ‘현재는 어둡게 보이지만 연구에서 오른쪽의 주름진 천을 시사하는 변화가 확인된 배경’으로 고치는 편이 정확하다. 그 수정은 작가가 남긴 공간적 단서를 되찾되, 소녀의 신원이나 방의 정체까지 알아냈다고 하지 않는다. 과학 조사가 바꾸는 것은 그림의 색만이 아니라, 우리가 무엇을 보았다고 말할 수 있는지의 범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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