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래를 널다가 말 한 마리를 발견한 사람. 비주얼 아티스트 헬가 스텐첼(Helga Stentzel)

빨랫줄에 흰 옷 몇 벌이 걸려 있다.
그런데 조금 떨어져서 보면 옷이 아니다. 목과 몸통, 다리의 형태가 이어지면서 한 마리의 말처럼 보인다.
사진가이자 비주얼 아티스트 헬가 스텐첼(Helga Stentzel)의 작업이다.
그는 빨래와 음식, 주방도구처럼 집 안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물건들을 조금 다르게 배치해 동물이나 얼굴처럼 보이게 만든다.
복잡한 CG로 새로운 형태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원래 있던 사물의 위치와 각도를 바꾸는 것만으로 이미지가 완전히 달라진다.

빨랫줄에 걸린 옷에서 시작된 동물
스텐첼은 자신의 작업 방식을 ‘Household Surrealism’이라고 부른다.
말 그대로 집 안의 평범한 물건에서 비현실적인 장면을 만들어내는 방식이다.
출발은 대개 아주 작은 관찰이다.
빨랫줄에 걸린 점퍼가 동물의 몸처럼 보이거나, 접시와 음식의 형태가 얼굴처럼 느껴지는 순간을 발견하면 거기서 이미지를 발전시킨다.
대표적인 ‘Clothesline Animals’ 시리즈도 그렇게 시작됐다.
2020년 팬데믹 시기에 만든 《Peg-asus》에서는 빨랫줄에 걸린 옷과 집게가 말의 형태로 보이도록 배치됐다. 이후 낙타와 유니콘처럼 서로 다른 동물들이 같은 방식으로 등장했다.

새로운 것을 만드는 대신, 다르게 보는 법
스텐첼의 작업에서 흥미로운 점은 재료가 특별하지 않다는 데 있다.
셔츠, 바지, 빵, 채소, 컵처럼 대부분 이미 알고 있는 물건들이다.
달라지는 것은 사물을 바라보는 방식이다.
평소에는 ‘옷’이나 ‘음식’이라는 기능으로만 인식하던 물건을 모양과 선, 색으로 다시 바라보는 순간 다른 이미지가 나타난다.
그래서 그의 작업은 초현실적으로 보이면서도 완전히 낯설지는 않다.
이미지가 무엇으로 만들어졌는지 금방 알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말의 몸처럼 보였던 부분이 사실 셔츠라는 것을 깨닫는 순간, 완성된 동물과 원래의 물건이 동시에 보이기 시작한다.
집 안에서도 충분히 새로운 장면을 찾을 수 있다

스텐첼은 자신의 작업을 통해 익숙한 일상에서 다시 호기심을 발견하는 일을 중요하게 여긴다고 설명한다.
그의 사진에서 상상력은 특별한 장소나 거대한 세트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오히려 매일 지나치는 주방과 식탁, 빨랫줄처럼 너무 익숙해서 자세히 보지 않게 된 장소에서 출발한다.
어쩌면 《Peg-asus》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도 옷이 말처럼 보인다는 사실 자체가 아닐 수 있다.
누군가는 그냥 지나쳤을 빨래를 한 번 더 바라봤고, 그 안에서 다른 형태를 발견했다는 점이다.
헬가 스텐첼의 ‘Household Surrealism’은 평범한 물건이 갑자기 변하는 작업이라기보다, 우리가 평범하다고 생각했던 사물을 다시 보는 방법에 가깝다.


빨랫줄의 말은 실제 동물을 촬영한 사진이 아니다
헬가 스텐첼의 작품을 처음 보는 사람은 멀리 펼쳐진 들판에서 말 한 마리가 서 있는 듯한 장면을 발견한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머리와 목, 몸통을 이루는 부분은 빨랫줄에 건 옷과 천의 실루엣이다. 관객이 한 번에 두 가지 이미지를 보게 되는 이유는 인식의 순서 때문이다. 처음에는 동물의 전체적인 윤곽을 받아들이고, 이어 셔츠와 바지, 집게가 어떻게 배치됐는지 하나씩 알아차리게 된다.
이처럼 같은 사진이 두 가지 의미로 읽히는 경험은 단순한 착시 이상의 재미를 준다. 옷의 원래 역할은 몸을 덮는 것이지만 작품에서는 상상 속 동물의 몸을 구성한다. 실제 말이 빨랫줄에 매달린 것도 아니고 이미지 속 동물 전체를 컴퓨터 그래픽으로 그려 넣은 것도 아니다. 평범한 물건의 위치를 바꾸어 새로운 대상을 연상하게 만드는 것이 핵심이다.
작가가 말한 Household Surrealism의 출발점
스텐첼은 일상적인 사물에서 뜻밖의 형상을 발견하는 작업을 Household Surrealism이라고 부른다. 그의 인터뷰에 따르면 빨랫줄에 걸린 스웨터가 말처럼 보이거나 빵이 강아지의 얼굴처럼 느껴지는 작은 발견이 새로운 아이디어의 시작이다. 이후에는 단순한 발견을 그대로 촬영하는 데서 끝나지 않고 동물의 성격과 이름, 배경에서 어떤 이야기가 만들어질지 상상하면서 이미지를 구체화한다.
따라서 모든 작품이 우연히 한 번 마주친 장면을 셔터로 찍어 기록한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처음 떠오른 생각을 실물의 배열과 배경, 촬영 구도로 발전시키는 제작 과정이 있다. 자연스럽게 널린 빨래처럼 보여도 옷의 색과 길이, 머리와 몸의 비례를 맞추는 선택이 들어간다. 작품의 인상이 가볍고 유쾌하다는 것과 만들기 쉬운 작업이라는 것은 같은 의미가 아니다.
Pegasus와 Laundrosaurus를 비교해 보면
공식 작품 목록에서 Pegasus는 빨랫줄에 걸린 옷으로 말의 형태를 만들고, Laundrosaurus는 공룡을 연상시키는 이미지를 보여준다. 또 다른 작품에서는 젖소와 곰, 작은 새의 형태를 찾을 수 있다. 동물마다 필요한 윤곽이 다르기 때문에 한 번 성공한 옷의 조합을 그대로 여러 작품에 반복할 수는 없다. 말이라면 길게 뻗은 목과 다리가 필요하고 공룡이라면 몸통과 꼬리가 어떻게 이어지는지가 중요하다.
특히 같은 세탁물이라는 재료를 사용해도 배경에 따라 이미지가 달라진다. 옷이 걸린 곳의 뒤편에 풀밭이 펼쳐지면 동물이 자연 속에 있는 듯 보일 수 있고 건물 벽이나 실내 공간이 보이면 전혀 다른 이야기가 만들어진다. 사진의 배경은 단순히 빈 공간을 채우는 장치가 아니라 관객이 왜 그것을 동물로 인식하는지 돕는 중요한 요소다.
옷과 풍경이 맞닿는 선을 보는 방법
스텐첼의 빨랫줄 동물 시리즈에서 주목할 부분은 어떤 옷을 골랐는지만이 아니다. 옷자락이 휘어지는 방향, 빨랫줄이 지나가는 높이, 바람에 흔들릴 때 만들어지는 곡선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사진은 입체적인 사물이 한 화면에 평면적으로 나타나는 매체이므로 카메라의 위치가 조금만 달라져도 동물처럼 이어져 보이던 선이 끊어질 수 있다.
관객은 작품을 볼 때 먼저 동물의 전체 형태를 보고, 다음에는 그 형태를 만드는 부분을 거꾸로 따라가 볼 수 있다. 말의 다리처럼 보이는 부분은 실제 어떤 옷자락인지, 목과 머리의 경계는 어떤 색 차이로 만들어졌는지 찾는 방식이다. 이 과정에서 이미지를 처음 볼 때 느낀 놀라움이 하나의 문제를 풀어 가는 재미로 바뀐다. 단순히 귀엽다는 감상보다 사물의 관계를 다시 읽는 경험이 더 길게 남을 수 있다.
음식과 가구가 얼굴처럼 보이는 작품은 왜 친숙할까
사람은 구름이나 벽의 무늬, 빵과 과일에서도 얼굴이나 동물을 연상할 때가 있다. 스텐첼의 작업은 이런 일상적인 시각 경험을 의도적으로 확장한다. 접시와 음식이 함께 놓였을 때 눈과 입의 위치를 떠올리거나 옷의 형태를 하나의 생물처럼 읽게 되는 것이다. 실제 사물이 가진 고유한 기능은 그대로이지만 몇 가지 시각적 단서가 다른 의미를 만든다.
그가 사용하는 재료는 특별한 장비나 고가의 물건에 한정되지 않는다. 주방의 그릇과 과일, 빨랫감처럼 누구에게나 익숙한 소재가 많다. 그렇다고 주변의 물건을 아무렇게나 늘어놓으면 모두 재미있는 이미지가 된다는 뜻은 아니다. 관객에게 낯선 대상을 알아보게 하는 단서를 얼마나 적절한 위치에 두느냐가 창작의 중요한 부분이다.
사진에 이름과 성격을 붙이는 이유
작가는 작품 속 존재들을 단순한 우연의 조합이 아니라 서로 다른 성격과 이야기를 가진 등장인물처럼 다룬다. 이름이 붙은 동물은 관객에게 단지 잘 만든 착시 그림이 아니라 어떤 행동을 하고 어디로 이동할지 상상하게 하는 캐릭터가 된다. 사진을 보는 사람은 자신이 발견한 말과 작가가 상상한 말이 어느 부분에서 같고 다른지 느낄 수도 있다.
이런 작업은 어린이에게 친근하게 다가올 수 있지만 어린이만을 위한 이미지라고 한정하기는 어렵다. 평소 사진과 미술 작품을 어려워하던 성인도 구체적인 사물을 먼저 알아보고 이야기 속으로 들어갈 수 있다. 작품이 복잡한 지식을 요구하기보다 누구나 가진 시각적 경험에서 출발한다는 점이 장점이다.
일상에서 비슷한 관찰을 시도해 본다면
집 안에서 가장 먼저 해볼 만한 일은 물건의 이름 대신 윤곽을 살펴보는 것이다. 예를 들어 컵의 손잡이를 동물의 귀처럼 보거나 옷의 주름이 하나의 표정을 만들 수 있는지 생각하는 식이다. 직접 사진을 찍는다면 원래 물건과 상상한 형태가 한 화면에서 동시에 보일 정도로 구도를 바꾸어 보는 것도 좋다. 원래 작품을 그대로 따라 하기보다 자신에게 익숙한 사물에서 다른 조합을 찾는 과정이 더 흥미로울 수 있다.
물론 이런 작은 창작을 위해 위험한 위치에 올라가거나 무거운 물건을 불안정하게 걸 필요는 없다. 빨랫줄과 집게를 활용한다면 다른 사람의 통행과 물건의 무게를 고려해 안전하게 배치해야 한다. 스텐첼의 작업이 전하는 중요한 메시지는 비싼 장비가 있어야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이 아니라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한 사물을 한 번 더 바라볼 수 있다는 사실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