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인데 플레이할 수 없다. 김희천의 두더지들이 묻는 현실

게임 화면 속 캐릭터가 움직인다. 낯선 공간을 지나가고, 다른 인물을 만나고, 어떤 사건을 경험한다. 분명 게임처럼 보이는데 이상한 점이 있다. 아무리 기다려도 관객에게 조작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 캐릭터는 스스로 움직이고, 이야기는 정해진 시스템 안에서 계속 진행된다.
그런데 조금 생각해 보면 우리에게도 익숙한 경험이다.
스마트폰을 열면 알고리즘이 추천한 영상이 나타나고, 우리가 무엇을 보고 좋아하는지에 따라 다음 콘텐츠가 결정된다. 우리는 자유롭게 선택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선택할 수 있는 것들은 이미 누군가 설계한 화면 안에 놓여 있다.
미디어 아티스트 김희천은 바로 이런 상황에 관심을 가져왔다.
2026년 8월 20일부터 11월 8일까지 서울시립 서서울미술관에서 열리는 개인전 《김희천: 두더지들》은 게임, 영상, 사진, 설치 작업을 통해 디지털 기술이 우리의 현실 감각과 정체성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탐색한다.
특히 이번 전시에는 이전 게임 속에 잠깐 등장했던 두더지가 주인공이 된 신작과 생성형 AI로 제작한 영상이 포함된다.
귀여운 두더지 한 마리에서 시작해 우리가 현실이라고 믿는 세계까지 질문하게 만드는 전시다.
게임인데 직접 플레이할 수 없다면, 여전히 게임일까?
일반적으로 게임과 영상을 구분하는 가장 큰 특징은 조작 가능성이다.
영화에서는 등장인물이 감독과 제작자가 설계한 이야기를 따라간다. 반면 게임에서는 플레이어가 캐릭터를 움직이고, 정해진 규칙 안에서 선택하며, 그 결과에 영향을 줄 수 있다.
그런데 김희천의 작품 〈커터3〉와 〈더블포져〉에서는 이 구분이 흔들린다.
2023년에 제작된 두 작품은 게임 엔진 유니티(Unity)를 이용한 자동 재생 게임이다.
유니티는 게임 속 가상의 공간과 사물, 캐릭터의 움직임을 구현하는 데 활용되는 개발 도구다. 일반적인 영상 편집 프로그램과 달리 가상 공간의 상태를 계산하고 장면을 실시간으로 만들어낼 수 있다.
김희천은 이 기능을 활용하면서도 관객이 게임을 조작하는 과정은 제거했다.
관객은 화면 속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볼 수 있지만, 캐릭터가 어디로 이동할지 직접 결정하지는 못한다.
여기서 중요한 차이가 있다.
게임 화면을 미리 녹화해 단순히 재생하는 것과 게임 엔진이 실제로 작동하면서 실시간으로 장면을 만들어내는 것은 같은 일이 아니다.
김희천의 작품은 후자에 가깝다. 관객은 조작하지 않지만 게임 시스템 자체는 계속 작동한다.
작가는 2026년 엘르 코리아와의 인터뷰에서 이러한 형식을 선택한 이유를 설명했다. 실제로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세계를 경험하는 것인지, 아니면 기술이 설계한 환경 안에서 경험하도록 유도되는 것인지 구분하기 어려웠다는 것이다.
게임을 조작할 수 없게 만들자 오히려 새로운 질문이 나타났다.
우리가 게임 속에서 느끼는 자유는 어디까지가 자신의 선택이고, 어디부터 시스템이 허용한 가능성일까?
화면 속 시간과 현실의 시간은 같지 않다
〈커터3〉와 〈더블포져〉를 이해할 때 또 하나 중요한 요소는 시간이다.
일반적인 영상은 촬영하고 편집한 장면이 일정한 순서로 재생된다. 같은 영화를 다시 본다면 장면의 순서와 길이는 기본적으로 같다.
하지만 게임 엔진은 다른 방식으로 작동할 수 있다.
가상 공간의 조건이나 내부 입력값에 따라 등장하는 장면과 사건의 순서를 변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김희천은 이러한 특징을 활용해 기존 영상과 다른 시간의 감각을 실험했다.
작가가 2026년 10월 하퍼스 바자 코리아와 진행한 인터뷰에 따르면, 〈커터3〉는 전체적인 진행에 무작위성이 있지만 두더지는 시간 순서에 따라 등장한다. 반대로 〈더블포져〉에서는 전체적인 시간이 순서대로 진행되는 가운데 두더지가 무작위로 나타난다.
단순히 게임처럼 보이는 영상을 만든 것이 아니라 게임 엔진의 작동 방식을 작품의 구성 요소로 사용한 것이다.
이 차이는 생각보다 중요하다.
일반적인 영상에서 시간은 이미 만들어진 장면들이 이어지는 순서에 가깝다. 반면 실시간 게임 엔진에서는 시스템이 작동하는 과정 자체가 화면의 시간을 만들어낼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은 미리 완성된 장면일까, 아니면 지금 이 순간 생성되고 있는 세계일까?
김희천의 게임 기반 작품은 이 질문을 관객이 경험하도록 만든다.
두더지 ‘버터’는 왜 서로 다른 게임을 오갈까?
이번 전시 제목인 《두더지들》을 이해하려면 2026년 신작 〈레몬〉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사실 두더지는 이번 작품에서 처음 등장한 캐릭터가 아니다.
앞서 제작된 〈커터3〉와 〈더블포져〉 안에 숨겨진 이스터 에그(Easter egg)로 존재했다.
이스터 에그는 게임이나 소프트웨어에 제작자가 몰래 넣어둔 작은 장치나 메시지를 뜻한다. 게임의 주요 진행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더라도 발견하는 사람에게 예상하지 못한 재미를 줄 수 있다.
김희천은 두 작품에 숨어 있던 두더지가 사실 땅굴을 파면서 서로 다른 게임의 세계를 오가고 있었다는 상상을 발전시켰다.
그렇게 탄생한 작품이 〈레몬〉이다.
작품은 ‘버터’라는 이름의 두더지를 주인공으로 한 가상의 비디오 게임 〈버터3〉의 플레이를 따라간다.
두더지는 땅 위와 아래를 이동하고, 서로 분리된 세계 사이에 새로운 길을 만든다.
서울시립미술관은 이런 두더지를 기술적인 환경으로부터 벗어나려는 존재이자, 기술에 의해 하나의 모습으로 규정되는 자아를 흔드는 상징으로 설명한다.
이 설정에서 두더지가 특별한 이유는 세상을 완전히 떠나는 존재가 아니라는 점이다.
두더지는 자신이 머무는 세계를 파괴하지 않는다. 대신 그 안에 구멍을 만들고 다른 곳으로 이동한다.
시스템을 완전히 벗어나는 대신 그 시스템이 예상하지 못했던 이동 경로를 찾아내는 것이다.
이 모습은 오늘날 우리가 디지털 플랫폼을 사용하는 방식과도 연결해서 읽을 수 있다.
플랫폼이 제공하는 기능을 이용하면서도 때로는 제작자가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콘텐츠를 만들고 공유하는 사람들이 있다.
두더지는 그런 작은 일탈과 새로운 가능성을 떠올리게 한다.
두더지가 레몬을 친구라고 믿으면 생기는 일
〈레몬〉에는 기술적인 시스템만큼이나 소박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두더지 버터는 나무에서 떨어진 레몬을 발견하고 자신과 비슷한 존재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레몬을 친구처럼 여기며 돌보기 시작한다.
하지만 레몬은 시간이 지나면서 썩어간다.
버터는 또 다른 레몬을 만나고, 다시 관계를 맺는다. 이러한 과정은 게임의 반복적인 구조 안에서 이어진다.
작가는 엘르 코리아 인터뷰에서 레몬의 양쪽 끝이 뾰족한 모양을 보고 두더지와 닮았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서로 전혀 다른 존재가 외형의 작은 유사성 때문에 관계를 맺는다는 설정이다.
여기서 흥미로운 질문이 생긴다.
두더지가 레몬을 친구라고 믿는다면 그 관계는 가짜일까?
레몬이 실제로 두더지와 같은 존재가 아니더라도, 버터가 느끼는 애정과 상실감까지 무의미해지는 것은 아닐 수 있다.
이러한 이야기는 디지털 세계에서 형성되는 관계를 생각하게 한다.
게임 속 캐릭터나 가상의 존재에게 애정을 느끼는 경험은 낯설지 않다. 오랫동안 함께한 게임 캐릭터가 사라졌을 때 아쉬움을 느끼거나, 가상 세계에서 만난 사람과 실제 친구가 되기도 한다.
그렇다고 〈레몬〉이 모든 디지털 관계를 긍정하거나 인간과 AI의 관계에 대한 명확한 결론을 내린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작품은 어떤 관계가 진짜인지 판단하기에 앞서, 우리가 그 관계를 어떻게 경험하는지 질문하게 만든다.
귀여운 캐릭터 이야기 안에 기술과 감정, 존재와 상실에 관한 문제가 함께 놓여 있는 것이다.
왜 두더지는 땅속에 있어야 할까?
두더지는 어둡고 보이지 않는 곳에 땅굴을 만든다.
대부분의 시간을 땅 아래에서 보내지만 어느 순간 예상하지 못한 장소에서 나타날 수 있다.
김희천은 엘르 코리아 인터뷰에서 새로운 문화나 흥미로운 현상이 등장해도 곧바로 알려지고 서로 연결되는 환경에 관심을 가졌다고 설명했다.
누군가가 새로운 것을 발견하면 그것은 빠르게 공유되고, 기록되고, 검색할 수 있는 정보가 된다.
이런 세계에서는 무엇인가가 오래 숨어 있기 어려워진다.
그런 상황에서 작가는 두더지라는 동물을 떠올렸다.
땅속에서 이동하는 두더지는 모든 것이 드러나고 연결되는 환경에 작은 빈틈을 만드는 존재처럼 느껴질 수 있다.
이러한 특성은 디지털 플랫폼의 작동 방식과 대비된다.
우리가 영상을 보고, 음악을 듣고, 물건을 검색하면 이러한 활동은 데이터로 남을 수 있다. 플랫폼은 그 정보를 활용해 다음에 어떤 콘텐츠를 보여줄지 판단한다.
물론 모든 서비스가 같은 방식으로 데이터를 수집하거나 활용하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사용자의 행동이 점점 더 많은 정보로 해석될 수 있는 환경이라는 점이다.
두더지는 이런 환경에서 쉽게 예측되지 않는 움직임을 상상하도록 만든다.
기술이 우리를 하나의 취향과 행동 패턴으로 설명하려 할 때, 그 설명에서 벗어나는 존재가 여전히 가능할까?
이번 전시의 제목은 바로 그런 질문과도 연결된다.
AI가 만든 영상보다 진짜 영상이 더 의심받는다면?
전시의 또 다른 신작 〈말린〉(2026)은 생성형 인공지능을 활용한 4채널 영상 작품이다.
서울시립미술관 공식 작품 정보에 따르면 영상 길이는 35분이며, 여러 화면과 사운드를 함께 사용하는 형식으로 구성됐다.
이번 작품에서 가장 흥미로운 설정은 자연 다큐멘터리 감독을 둘러싼 사건이다.
작품 속 감독은 자신이 촬영한 영상이 생성형 AI로 만들어진 이미지가 아니라 실제로 촬영된 것임을 증명해 달라는 요구를 받는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가짜로 의심되는 이미지의 진위를 확인하려 한다.
하지만 여기서는 질문의 방향이 바뀐다.
가짜라는 증거를 찾는 것이 아니라 진짜라는 사실을 증명해야 하는 상황이 만들어진 것이다.
이 설정은 생성형 AI가 널리 활용되는 환경에서 이미지의 신뢰가 어떻게 달라질 수 있는지 보여준다.
과거에는 사진이나 영상이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가 어떤 사건이 실제로 일어났다는 근거로 받아들여지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는 카메라로 촬영하지 않은 장면도 실제 촬영한 것처럼 보이게 만들 수 있다.
그렇다면 이미지의 외형만으로 무엇이 실제로 일어났는지 판단하는 일은 점점 어려워질 수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모든 AI 이미지가 거짓이거나 모든 실제 촬영 영상이 진실을 정확하게 전달한다는 식의 단순한 구분이 아니다.
실제로 촬영한 영상도 촬영 위치와 편집, 맥락에 따라 전혀 다른 이야기를 전달할 수 있다.
반대로 AI로 생성한 이미지는 허구적인 표현이나 예술 작품으로서 분명한 가치를 가질 수도 있다.
〈말린〉이 흥미로운 이유는 진짜와 가짜를 간단하게 구분하려 하기보다 그 구분이 얼마나 복잡해졌는지 하나의 이야기로 보여준다는 점이다.
생성형 AI를 사용하는 예술가는 무엇을 선택하게 될까?
김희천은 이전부터 GPS, 얼굴 합성 기술, 게임 엔진 등 당시 사람들이 실제로 사용하던 디지털 기술을 작업에 활용했다.
그런데 생성형 AI를 사용한 이번 작품에는 조금 다른 제작 경험이 담겨 있다.
작가는 2026년 엘르 코리아와의 인터뷰에서 AI 이미지 제작 과정의 특징을 설명했다.
기존의 촬영에서는 계획하지 않았던 장면이 우연히 만들어지고, 처음에는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던 장면이 나중에 작품의 일부가 되기도 한다.
반면 생성형 AI를 이용할 때는 결과물을 빠르게 확인하고 사용할지 말지 판단하는 과정이 반복됐다고 설명했다.
여기에는 제작 방식에 관한 중요한 차이가 있다.
카메라로 현실을 촬영하는 일과 입력한 조건을 바탕으로 이미지를 생성하는 일은 모두 선택과 편집을 포함하지만, 우연이 발생하는 방식과 제작자가 결과에 개입하는 과정은 같지 않다.
그렇다고 모든 AI 작업이 우연을 배제한다거나 모든 사진 촬영이 예상하지 못한 결과를 만들어낸다는 뜻은 아니다.
김희천의 경험은 서로 다른 제작 도구가 예술가에게 어떤 감각을 요구하는지 생각하게 한다.
기술이 발전하면 창작자가 더 많은 것을 할 수 있게 된다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새로운 도구가 등장한다는 것은 동시에 새로운 선택의 방식에 익숙해져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무엇을 만들어낼 수 있는지만큼, 그 과정에서 어떤 경험을 얻고 무엇을 놓치는지도 중요한 질문이 되는 것이다.
스마트폰 사진 5,841장이 전시장에 등장한 이유
〈말린〉이 생성형 AI를 통해 만들어낸 이미지라면, 〈.dng〉는 조금 다른 방향에서 출발한다.
김희천은 2023년부터 휴대전화로 촬영한 사진 5,841장 가운데 일부를 선별해 이번 전시에서 처음 공개했다.
서울시립미술관은 전시 출품 사진을 100여 점으로 안내하고 있다.
작품의 제목인 ‘.dng’는 디지털 사진 파일 형식인 DNG(Digital Negative)의 확장자와 같다.
DNG는 디지털 카메라의 이미지 데이터를 보존하기 위해 만들어진 파일 형식이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작품에 등장하는 장면은 특별한 목적을 위해 연출한 거대한 사건이 아니다.
작가가 생활하면서 우연히 발견한 사물과 사람, 주변 환경을 기록한 이미지들이다.
공개된 전시 취재 자료에는 동물과 곤충, 지나가는 사람, 거울에 비친 인물 등이 등장한다.
이 사진들은 게임 엔진이나 생성형 AI로 만들어진 이미지와 다른 감각을 제공한다.
그러나 스마트폰 사진이라고 해서 기술과 무관한 순수한 현실의 기록이라고 단정할 수도 없다.
어디에 카메라를 향할지, 어떤 구도로 촬영할지, 수천 장의 이미지 가운데 무엇을 남길지는 모두 선택의 과정이기 때문이다.
특히 오늘날 스마트폰은 촬영과 동시에 이미지 처리 기술을 사용한다.
우리가 직접 찍은 사진조차 이미 여러 기술을 거친 결과물일 수 있다는 의미다.
그런 점에서 〈.dng〉는 생성형 AI 영상과 흥미로운 대비를 만든다.
하나는 컴퓨터가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방식이고, 다른 하나는 카메라로 실제 세계의 일부를 기록하는 방식이다.
두 작품을 나란히 생각하면 어떤 이미지가 더 진짜인지 단순히 비교하기보다 우리가 이미지를 통해 현실을 이해하는 방법 자체를 살펴보게 된다.
김희천은 왜 기술을 비판하면서 기술을 사용할까?
김희천의 작업에는 흥미로운 모순처럼 보이는 부분이 있다.
디지털 기술이 현실과 인간의 정체성을 바꾸는 방식을 비판적으로 탐색하면서, 정작 작품을 만드는 데는 게임 엔진과 생성형 AI 같은 기술을 적극적으로 사용한다는 점이다.
하지만 이것을 모순이라고만 보기는 어렵다.
어떤 기술의 작동 방식을 이해하려면 실제로 사용하면서 그 가능성과 한계를 살펴보는 과정이 필요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2015년 첫 비디오 작업 〈바벨〉을 시작으로 스크린과 디지털 이미지가 현실을 구성하는 방식에 관심을 가져왔다.
이후 〈썰매〉, 〈홈〉, 〈메셔〉, 〈탱크〉 등에서 가상과 현실, 신체와 데이터, 네트워크가 연결되는 경험을 탐색했다.
〈커터3〉와 〈더블포져〉에 이르러서는 기술의 영향을 작품의 내용으로 설명하는 데 그치지 않고, 기술의 작동 방식 자체를 작품의 구조로 가져왔다.
그리고 2026년 《두더지들》에서는 게임 엔진, 생성형 AI, 스마트폰 사진을 하나의 전시 안에 배치한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기술 자체의 신기함보다 그것을 통해 경험하는 세계다.
가상의 캐릭터에게 애정을 느끼는 일, 스마트폰에서 추천받은 콘텐츠를 자신의 취향이라고 생각하는 일, AI 이미지와 실제 사진을 구별하기 어려워지는 경험은 이미 우리의 일상에 존재한다.
김희천은 이런 익숙한 상황을 조금씩 비틀어 우리가 평소 의심하지 않았던 질문을 만들어낸다.
전시를 처음 본다면 무엇에 주목하면 좋을까?
《김희천: 두더지들》은 게임이나 미디어아트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에게 처음부터 쉬운 전시로 느껴지지 않을 수 있다.
여러 작품이 서로 연결되고, 화면 안에는 익숙하지 않은 인물과 사건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든 세계관을 완벽하게 이해해야만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커터3〉와 〈더블포져〉에서는 관객이 조작할 수 없는 게임이 어떤 감각을 만드는지 생각해 볼 수 있다.
〈레몬〉에서는 두더지 버터의 움직임과 레몬을 향한 감정을 따라가며 가상의 존재에게 느끼는 애정과 상실을 떠올려볼 수 있다.
〈말린〉에서는 자연 다큐멘터리라는 익숙한 영상 형식이 생성형 AI와 만나면서 어떤 질문을 만들어내는지 살펴볼 수 있다.
그리고 〈.dng〉에서는 평범한 스마트폰 사진이 게임과 AI 이미지 사이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 생각해 보면 좋겠다.
작가가 하퍼스 바자 코리아와 진행한 인터뷰에 따르면 모든 영상 작품을 처음부터 끝까지 보려면 최소 두 시간 반 정도가 필요하다.
따라서 짧은 시간에 모든 작품을 완벽하게 이해하려고 하기보다 관심 있는 작품의 형식과 이야기를 중심으로 감상하는 방법도 고려할 수 있다.
다만 이는 관람을 준비하는 독자를 위한 제안이며, 실제 전시장에서 직접 확인한 동선이나 관람 후기는 아니다.
김희천 《두더지들》 전시 일정과 관람 정보
《김희천: 두더지들》은 2026년 8월 20일부터 11월 8일까지 서울시립 서서울미술관에서 열린다.
전시장 주소는 서울 금천구 시흥대로79길 65다.
작품은 미술관 지하 1층의 제1전시실, 제2전시실, 다목적홀에서 소개된다. 전시 관람료는 무료다.
관람시간은 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오전 10시부터 오후 8시까지다. 토요일·일요일과 공휴일에는 계절별 운영시간이 다르다. 3월부터 10월까지는 오전 10시~오후 7시, 11월부터 2월까지는 오전 10시~오후 6시다.
마지막 입장은 관람 종료 30분 전까지 가능하며, 월요일은 기본적으로 휴관한다. 다만 월요일이 공휴일인 경우에는 정상 개관한다.
전시의 마지막 날인 11월 8일은 일요일이며, 동절기 운영시간이 적용되므로 오후 6시에 관람이 종료된다.
공식 안내에는 전시 기간 매일 오후 2시 도슨트 해설이 예정돼 있다. 다만 실제 진행 여부와 참여 방법은 방문 전에 최신 공지를 확인하는 것이 좋다.
전시 페이지에서는 사전 예약 기능도 제공하지만, 모든 방문객에게 예약이 필수인지에 대해서는 별도 안내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
대중교통을 이용한다면 지하철 1호선 금천구청역 1번 출구를 이용할 수 있다.
서울시립 서서울미술관은 뉴미디어에 특화한 공공미술관으로, 기존 전통적인 회화와 조각 중심의 미술관과는 다른 형태의 작업을 소개한다.
이번 전시는 서서울미술관이 선보이는 첫 미디어 작가전이라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기술이 나를 설명할 때, 나는 얼마나 자유로울까?
우리는 디지털 기술을 이용해 이전보다 훨씬 많은 것을 할 수 있게 됐다.
멀리 있는 사람과 즉시 연락하고, 원하는 음악을 찾아 듣고, 경험하지 못한 장소를 화면으로 둘러볼 수 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우리의 행동 역시 데이터로 기록되고 해석될 수 있다.
어떤 영상을 오래 보는지, 무엇을 검색하는지, 어떤 이미지에 반응하는지에 따라 디지털 서비스는 우리에게 새로운 콘텐츠를 추천한다.
그 결과 우리는 자신이 원래 좋아하던 것을 더 자주 만나기도 하고, 예상하지 못했던 관심사를 발견하기도 한다.
김희천의 《두더지들》은 바로 이런 환경 속에서 자신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는지 질문한다.
게임을 조작할 수 없는 관객, 시스템의 경계를 오가는 두더지, 진짜임을 증명해야 하는 영상, 스마트폰에 남겨진 수천 장의 사진은 서로 다른 형식의 작품이다.
그러나 이 작품들이 향하는 질문에는 공통점이 있다.
기술이 우리의 경험을 구성하고 행동을 예측하는 환경에서도, 우리는 그 시스템의 설명과 다른 존재가 될 수 있을까?
전시 속 두더지는 완벽한 탈출구를 제시하지 않는다.
다만 정해진 경로에서 벗어나 작은 구멍을 파고, 예상하지 못한 장소에 다시 나타난다.
어쩌면 그 작은 움직임이 이 전시를 이해하는 중요한 단서일지 모른다.
모든 것이 연결되고 기록되는 세상에서, 아직 설명되지 않은 자신을 발견할 여지가 남아 있다는 것.
김희천의 두더지는 바로 그 가능성을 상상하게 만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