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 속 주인공이 더는 행복하지 않다면? 사이먼 후지와라의 이상한 곰

어릴 때 읽었던 동화는 대부분 비슷한 문장으로 끝난다. 왕자는 공주를 구하고, 악당은 벌을 받으며, 주인공은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왕자가 더 이상 용감하지 않고, 인어공주가 누군가의 죽음을 슬퍼하며, 아름다운 장미가 유리관 안에서 숨 막혀 한다면 어떨까?
영국과 일본에 뿌리를 둔 작가 사이먼 후지와라(Simon Fujiwara)는 이러한 상상에서 출발한다. 그의 캐릭터 ‘후 더 베어(Who the Bær)’는 동화 속 익숙한 주인공으로 끊임없이 변신하지만, 그 누구도 완전히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
2026년 9월 2일부터 10월 31일까지 서울 한남동 에스더 쉬퍼에서 열리는 개인전 《Who Lived Happily Ever After?》는 이런 이야기를 새로운 회화로 풀어낸다.
귀여운 만화 캐릭터와 알록달록한 색감이 먼저 눈에 들어오지만, 그 안에 담긴 질문은 생각보다 현실적이다. 우리는 왜 다른 사람에게 좋은 모습으로 보이려고 노력할까? 끊임없이 변화해야 하는 세상에서 나다운 모습이란 무엇일까?

이름부터 이상한 곰, ‘Who the Bær’는 누구일까?
후 더 베어는 사이먼 후지와라가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 초기의 봉쇄 기간에 만든 가상의 곰 캐릭터다.
청바지를 입고, 가슴에는 황금빛 하트가 있으며, 유난히 긴 혀를 가진 모습이 특징이다. 언뜻 보면 친숙한 애니메이션 캐릭터 같지만 일반적인 만화 주인공과는 중요한 차이가 있다.
이 곰에게는 고정된 성별이나 인종, 국적, 성적 정체성, 심지어 일관된 외형조차 정해져 있지 않다.
대부분의 유명 캐릭터는 알아보기 쉬운 외모와 성격을 갖고 있다. 미키 마우스는 둥근 귀가 상징이고, 곰돌이 푸는 특유의 빨간 옷과 성격으로 기억된다. 캐릭터가 어떤 존재인지 쉽게 알아볼 수 있도록 반복되는 특징을 유지하는 것이다.
그런데 후 더 베어는 반대로 움직인다.
새로운 이미지를 만나면 그 안으로 들어가고, 다른 캐릭터를 발견하면 그 모습을 따라 한다. 유명 예술 작품의 등장인물이 되기도 하고, 광고나 대중문화 속 상징을 자신의 일부로 가져오기도 한다.
그렇게 계속 변신하면서 자신이 누구인지 알아내려 한다.
캐릭터 이름의 ‘Who’도 이러한 설정과 연결된다. 누군가를 묻는 영어 의문사이자, 정체성을 탐색하는 캐릭터의 이름이다.
흥미로운 건 아무런 정체성이 없기 때문에 무엇이든 될 수 있는 존재가, 정작 자신이 누구인지 답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귀여운 곰이 어떻게 현대미술 작품이 됐을까?
사이먼 후지와라는 1982년 런던에서 태어났으며 현재 베를린을 기반으로 활동한다.
그는 회화만을 제작하는 작가가 아니다. 영상과 설치, 건축적인 공간 연출, 공연 형식을 활용해 개인과 사회가 정체성을 만들어가는 방식을 탐색해 왔다.
대표적인 관심사 가운데 하나는 사람들이 현실을 경험하는 과정에 대중문화와 기술이 얼마나 깊숙하게 개입하는지에 관한 것이다.
여행지의 관광 상품이나 유명인의 이미지, 역사적인 사건을 재현한 전시 공간처럼 우리가 소비하는 문화적 경험을 작품의 소재로 가져왔다.
후 더 베어 역시 이러한 관심에서 탄생했다.
작가는 팬데믹 기간에 사람들이 온라인 이미지와 대중문화를 통해 자신을 표현하는 모습에 주목했다. 여러 이미지가 끊임없이 만들어지고 소비되는 환경에서, 사람들이 자신을 설명하기 위해 사용하는 기호와 캐릭터는 어떤 의미를 가질까?
그 질문에 대한 하나의 실험이 정체성이 비어 있는 곰이었다.
이 캐릭터는 2021년 밀라노 폰다치오네 프라다(Fondazione Prada)의 개인전을 통해 본격적으로 소개됐다.
당시에는 카드보드 구조물과 애니메이션, 콜라주, 설치 등을 활용해 곰이 살아가는 가상의 세계를 구현했다. 이후 2022년 도쿄 프라다 아오야마에서도 캐릭터의 이야기가 소개됐다.
이번 서울 전시는 그동안 다양한 매체를 넘나들던 캐릭터가 동화와 신화 속 주인공들을 만나는 새로운 단계라고 볼 수 있다.

왕자가 더 이상 용감하지 않다면?
동화에서 왕자는 대개 이야기의 문제를 해결하는 인물이다.
위험에 빠진 공주를 구하고, 괴물을 물리치며, 결국 모두가 행복해지는 결말을 만들어낸다.
하지만 후지와라의 2026년 회화 〈Who Was Once a Hero Whose Bravery is Lost?〉에서 왕자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금발의 왕자는 땀을 흘리며 혼란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다. 손에는 여전히 검을 들고 있지만, 그가 타고 있는 말은 기계처럼 각진 신체가 부서지듯 무너지고 있다.
용감한 영웅이 위기에 처한 누군가를 구하는 대신, 자신이 어디로 가야 할지조차 알지 못하는 모습이다.
이 작품이 흥미로운 이유는 왕자의 외형보다 역할의 변화에 있다.
우리는 왕자라는 인물에게 특정한 행동을 기대한다. 강하고, 용감하며, 누군가를 보호할 수 있는 존재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기대를 충족하지 못하는 순간, 왕자는 더 이상 왕자가 아닌 걸까?
작품은 영웅에게 요구되는 용기와 강인함이 그 인물의 본질인지, 아니면 오랫동안 반복된 이야기 속에서 만들어진 역할인지 질문하게 만든다.
현실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난다.
사회가 요구하는 성공적인 직장인, 좋은 부모, 멋진 연인 같은 역할을 수행하는 데 익숙해지면, 정작 그 역할을 벗어난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설명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
후지와라의 왕자는 동화 속 인물이지만, 그가 겪는 혼란은 현대인의 경험과도 연결해서 읽을 수 있다.
인어공주의 바닷속에 스마트폰이 등장한 이유
다른 작품 〈Who are the Drowned that the Little Mermaid Mourns?〉에서는 익숙한 인어공주의 이야기가 새로운 방향으로 전개된다.
그림에는 물속에서 누군가의 죽음을 슬퍼하는 인어공주가 등장한다. 바다에 떠 있는 인물의 손에는 스마트폰이 남아 있다.
원래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의 1837년 동화에서 인어공주는 물에 빠진 왕자를 구한다. 이후 인간의 세계로 향하기 위해 자신의 목소리를 포기하는 선택을 한다.
하지만 후지와라의 그림은 구원받은 인물보다 구원받지 못한 존재에 관심을 돌린다.
특히 스마트폰이라는 사물이 이야기의 의미를 바꿔놓는다.
스마트폰은 본래 타인과 연결되고 정보를 얻기 위한 도구다. 하지만 화면 속 세계에 지나치게 몰입하는 상황을 떠올리면, 끊임없이 이어지는 콘텐츠 자체가 사람을 압도하는 환경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작품 속 물은 실제 바다인 동시에 이미지와 정보가 쏟아지는 온라인 세계를 연상하게 한다.
이런 해석은 인어공주의 원래 이야기와 오늘날의 디지털 경험을 연결한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사람들은 언제나 더 많은 소식을 알고 싶어 하고, 더 많은 사람과 연결되기를 원한다. 하지만 연결의 수가 늘어난다고 반드시 만족감이나 안정감까지 커지는 것은 아니다.
동화 속 인어공주가 사랑을 위해 자신의 목소리를 포기했다면, 오늘날의 우리는 디지털 세계에 참여하는 과정에서 무엇을 내어주고 있을까?

피리 부는 사나이를 따라가는 아이들이 스마트폰을 보고 있다면
이번 전시에서 대중문화와 인터넷의 관계가 특히 직접적으로 드러나는 작품은 〈Who Will Lead our Boys Away by the Sound of their Sweet, Sweet Song?〉이다.
독일의 오래된 전설인 ‘하멜른의 피리 부는 사나이’를 현대적으로 다시 해석한 그림이다.
원래 이야기에서 피리 부는 사나이는 음악으로 쥐들을 유인하고, 약속된 보상을 받지 못하자 이번에는 아이들을 마을 밖으로 이끌고 떠난다.
후지와라의 그림에도 피리를 부는 인물이 등장한다. 그러나 그를 따라가는 소년들은 저마다 스마트폰 화면에 몰두하고 있다.
작가는 이 장면을 통해 온라인에서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인플루언서와 그 영향력을 떠올리게 한다.
특히 공식 작품 설명에서는 젊은 남성의 소속감과 불안을 이용하는 온라인 남성주의 영향력자들을 연상시키는 사례로 해석한다.
다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스마트폰 자체가 악한 도구라는 단순한 결론이 아니다.
피리 부는 사나이의 음악이 아이들의 행동을 이끌었던 것처럼, 오늘날에도 어떤 목소리와 이미지가 우리의 생각과 선택을 이끌 수 있다는 점이다.
영상 하나를 보다가 비슷한 콘텐츠를 연속으로 접하고, 어느 순간 특정한 인물의 말투나 가치관까지 따라 하게 되는 경험을 떠올릴 수 있다.
예전 동화에서는 소리가 사람들을 유혹했다면, 지금은 이미지와 알고리즘을 통해 비슷한 일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작품은 오래된 전설을 단순히 새로운 그림체로 표현하기보다, 그 안에 담긴 유혹과 영향력의 문제를 현대적인 상황으로 옮겨놓는다.
유리관 안에서 숨 막혀 하는 장미
〈Who Can’t Breathe?〉는 《미녀와 야수》에 등장하는 마법의 장미를 다시 해석한 작품이다.
우리가 익숙하게 알고 있는 이야기에서 장미는 시간이 흐르고 있다는 사실을 알리는 중요한 상징이다. 꽃잎이 모두 떨어지기 전에 진정한 사랑을 얻어야 한다는 조건을 보여준다.

하지만 후지와라의 그림에서는 장미 자체가 고통을 겪는 존재가 된다.
유리관 안의 장미에는 걱정스러운 얼굴이 생겼고, 초록색 팔을 들어 유리벽을 밀어내려 한다. 꽃잎은 아래로 떨어지고 있으며, 장미는 갇혀 있는 공간에서 벗어나려고 애쓰는 모습이다.
장미가 더 이상 시간을 알려주는 소품이 아니라 이야기의 주인공처럼 표현된 것이다.
이 장면에서 유리관은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유리관은 아름다운 물건을 보존하고 전시하기 위한 장치처럼 보일 수 있지만, 안에 있는 존재에게는 빠져나갈 수 없는 공간이기도 하다.
누군가의 눈에 아름답게 보여야 하는 존재가 그 기대 때문에 고통받는 상황으로 읽을 수 있는 것이다.
사회가 요구하는 이상적인 외모나 성공적인 삶의 이미지 역시 비슷한 문제를 낳을 수 있다.
사람들에게 인정받기 위해 만들어낸 모습이 어느 순간 자신을 가두는 기준으로 바뀌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후지와라가 그린 장미는 예쁜 동화 속 소품보다,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을 감당하느라 지친 인물에 가까워진다.
이번 전시는 왜 ‘정체성 찾기’보다 ‘정체성의 피로’에 집중할까?
후 더 베어의 이전 작업에서는 자신이 누구인지 알아내려는 여행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캐릭터는 서로 다른 인물과 이미지로 변신하면서 새로운 정체성을 얻으려고 했다.
그러나 이번 《Who Lived Happily Ever After?》에서는 질문의 방향이 조금 달라진다.
더 이상 ‘나는 누구인가?’만을 묻는 것이 아니라, ‘나는 얼마나 많은 역할을 계속 수행해야 하는가?’라는 문제에 가까워진다.
동화 속 왕자는 용감해야 하고, 공주는 아름다워야 하며, 악당은 위협적이어야 한다. 이러한 규칙이 반복될수록 각각의 등장인물은 특정한 역할에서 벗어나기 어려워진다.
후지와라는 이런 인물들을 혼란스럽고 불안한 상태로 다시 그린다.
악당은 겁을 먹고, 영웅은 방향을 잃으며, 공주 역시 전통적인 해피엔딩의 주인공과는 다른 모습이 된다.
한 사람 안에도 여러 모습이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이 변화는 자연스럽다.
누군가는 직장에서는 자신감 넘치는 사람으로 행동하지만, 가까운 관계에서는 불안함을 느낄 수 있다. 온라인에서는 밝고 활발한 이미지를 보여주면서 실제 생활에서는 조용한 시간을 더 좋아할 수도 있다.
그렇다고 어느 한쪽이 반드시 가짜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문제는 우리가 선택한 여러 모습 가운데 어느 것도 자유롭게 내려놓지 못하는 상황일 수 있다.
이번 전시는 귀여운 캐릭터를 통해 바로 그런 피로감을 생각하게 만든다.
디즈니 캐릭터처럼 보이지만, 디즈니와의 협업일까?
후 더 베어를 처음 접하면 디즈니 애니메이션을 떠올릴 수 있다.
익숙한 동화 속 등장인물과 선명한 색채, 만화적인 표현이 결합돼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번 전시에서는 디즈니 애니메이션을 통해 널리 알려진 동화 속 이미지들이 중요한 참고 대상이다.
그러나 이것을 디즈니가 공식적으로 제작한 새로운 캐릭터나 디즈니와의 협업 전시라고 이해해서는 안 된다.
후 더 베어는 사이먼 후지와라가 만든 독립적인 예술 캐릭터이며, 이번 전시는 그가 대중문화의 표현을 활용해 새로운 작품을 선보이는 개인전이다.
여기서 중요한 차이가 있다.
일반적인 캐릭터 상품은 그 캐릭터가 누구인지 알아보기 쉽도록 외형과 성격을 일관되게 유지한다. 하지만 후 더 베어는 기존 이미지와 역할을 계속 빌려오면서 그 정체성이 얼마나 불안정한지 드러낸다.
이러한 방식은 캐릭터를 소비하는 우리 자신의 행동과도 연결된다.
사람들은 좋아하는 캐릭터의 의상을 구매하고, 이미지를 공유하고, 그 캐릭터가 표현하는 성격이나 가치관에 자신을 투영하기도 한다.
캐릭터는 가상의 존재지만 현실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표현하는 수단이 될 수 있는 것이다.
후지와라는 그 과정을 조금 더 극단적으로 밀어붙인다. 어떤 캐릭터든 될 수 있는 곰을 통해, 현대사회가 사람들에게 얼마나 다양한 이미지를 요구하는지 질문한다.

회화인데 만화처럼 느껴지는 이유
이번 전시는 새로운 회화 작품들을 중심으로 구성된다.
작품에는 아크릴 물감과 목탄, 파스텔 등 서로 다른 재료가 사용됐다.
만화 캐릭터를 소재로 삼았지만 단순히 디지털 이미지를 출력한 작품이 아니라, 회화의 물질적인 표현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는 점도 흥미롭다.
작가는 이미 잘 알려진 동화의 장면을 가져온 뒤, 등장인물의 형태를 분해하거나 다른 방식으로 재구성한다.
그 과정에는 미술사적인 회화 양식의 영향도 나타난다. 갤러리 공식 설명에 따르면 특히 후기 입체주의를 연상시키는 분절된 형태가 중요한 특징 가운데 하나다.
입체주의는 하나의 대상을 단일한 시점에서 재현하기보다 여러 형태와 시각을 결합해 표현했던 미술의 흐름이다.
후지와라의 작품에 이러한 조형 언어가 나타난다는 사실은 캐릭터의 불안정한 정체성과도 연결해 볼 수 있다.
한 인물이 고정된 형태로 존재하는 대신 여러 역할과 모습으로 분리되고 다시 결합되는 것이다.
작품은 동화책의 한 장면처럼 친숙하게 다가오지만, 그 안의 형태와 내용은 우리가 알고 있는 이야기와 조금씩 어긋난다.
그렇게 생기는 차이가 이번 회화를 감상하는 중요한 지점이다.
사이먼 후지와라 서울 전시, 언제 어디서 볼 수 있을까?
《Who Lived Happily Ever After?》는 2026년 9월 2일부터 10월 31일까지 에스더 쉬퍼 서울에서 열린다.
에스더 쉬퍼는 베를린을 기반으로 성장한 국제적인 현대미술 갤러리로, 서울에도 전시 공간을 운영하고 있다. 이번 전시는 후지와라가 에스더 쉬퍼 서울에서 개최하는 첫 개인전이다.
서울 전시장은 용산구 한남대로46길 24에 위치한다. 지하철 6호선 한강진역 2번 출구에서 도보로 약 10분 거리다.
공식적으로 안내된 운영시간은 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오전 11시~오후 6시다. 공휴일이나 특별 일정에는 변동될 수 있으므로 방문 직전 확인하는 것이 좋다.
전시장에서는 서로 다른 색으로 구성된 공간에 작품들이 배치된다. 각각의 동화가 가진 분위기와 역할의 차이를 공간 구성과 함께 살펴볼 수 있도록 계획된 전시다.
다만 현재 확인한 공식 자료에는 일반 관람료나 별도 예약 필요 여부가 명확하게 제시돼 있지 않다. 방문을 계획한다면 갤러리의 최신 안내를 확인하는 편이 정확하다.

동화의 마지막 문장은 정말 행복한 결말일까?
우리는 어릴 때부터 여러 동화 속 인물을 만나며 성장했다.
왕자는 용감하고, 공주는 아름다우며, 선한 사람은 결국 행복해진다는 이야기들이었다.
이런 서사는 위로가 되기도 한다. 세상이 복잡하더라도 마지막에는 모든 일이 제자리를 찾을 수 있다는 믿음을 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실의 삶은 동화처럼 하나의 역할로 설명하기 어렵다.
용감했던 사람이 두려워할 수도 있고, 행복해 보이는 사람이 불안할 수도 있다. 누군가에게 인정받기 위해 만들어낸 모습이 시간이 지나 자신에게 부담이 될 수도 있다.
사이먼 후지와라의 후 더 베어는 그런 모순을 귀여운 캐릭터의 모습으로 보여준다.
이 곰은 계속 다른 존재가 되지만, 그 과정에서 완벽한 정체성이나 확실한 행복을 발견했다고 말하지 않는다.
어쩌면 이번 전시가 던지는 중요한 질문은 누가 행복하게 살았는지를 알아내는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우리가 생각하는 행복한 결말은 누구에 의해 만들어졌으며, 그 결말에 도달하기 위해 사람들은 어떤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가.
그렇게 생각하면 동화 속 혼란스러운 왕자와 숨 막혀 하는 장미는 더 이상 낯선 등장인물이 아니다.
그들은 완벽한 모습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기대 속에서 지친 우리 자신의 모습을 조금씩 닮아 있다.
출처 및 참고자료
- Esther Schipper — 《Who Lived Happily Ever After?》 공식 전시 안내
- Esther Schipper — 전시 기획 및 작품 설명
- Esther Schipper — Simon Fujiwara 공식 작가 소개
- Esther Schipper — 〈Who Was Once a Hero Whose Bravery is Lost?〉
- Esther Schipper — 〈Who are the Drowned that the Little Mermaid Mourns?〉
- Esther Schipper — 〈Who Will Lead our Boys Away by the Sound of their Sweet, Sweet Song?〉
- Esther Schipper — 〈Who Can’t Breathe?〉
- Fondazione Prada — Who the Bær 전시 공식 가이드
- Esther Schipper — 서울 갤러리 위치 및 방문 안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