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화의 AP는 왜 에디션 밖에 있을까

T. O. Barlow의 1862년 John Kay 초상 메조틴트 아티스트 프루프, 여백과 하단 표기를 보존한 전체 인쇄물
T. O. Barlow, 《John Kay》, 1862, 메조틴트 아티스트 프루프. Wellcome Collection, Public Domain Mark.

판화 AP 표기는 남들보다 먼저 찍은 한 장이라는 뜻일까. 보통은 정규 번호 에디션과 별도로 작가에게 배정한 인쇄본, 아티스트 프루프를 가리킨다. 여기서 에디션 밖이라는 말은 작품의 범위 밖이 아니라 일반 번호를 매긴 묶음 밖이라는 뜻이다. AP라는 글자만으로 시험 인쇄인지, 더 우수한 인쇄본인지, 진품인지까지 판정할 수는 없다.

같은 이미지 아래에 12/50, AP 2/5, BAT가 적혀 있다면 세 표기를 높은 등급부터 줄 세우는 대신 각각 무엇을 설명하는지 물어야 한다. 번호는 어느 묶음에 속하는지, AP는 누구에게 배정했는지, BAT는 인쇄 과정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를 알려준다. 종이의 여백은 점수표보다 제작 기록에 가깝다.

분모는 모든 종이의 총수가 아니다

가상의 판화에 12/50이 적혀 있다고 하자. 정규 번호 에디션 50부 가운데 번호 12를 부여한 인쇄본이라는 읽기가 출발점이다. 같은 작품의 AP 2/5는 작가용으로 구분한 5부 중 번호 2인 셈이다. 이 둘의 분모를 같은 집합으로 취급하면 안 된다. 게티의 작품 기술 지침은 작가용 인쇄본을 번호 에디션에서 제외되는 유형으로 설명하며, AP 자체에도 별도의 번호를 붙일 수 있다고 명시한다.

실제 기록을 보면 차이가 더 분명해진다. 노먼 록웰 미술관 스토어는 작가가 승인하고 서명한 회화의 한정 복제 인쇄물을 설명하면서, 정규 번호 200부와 번호 없는 AP 60부, 로마 숫자로 구분한 AP 35부를 함께 기록한다. 합계는 295부다. 여기서 200이라는 분모를 해당 이미지가 찍힌 종이의 전체 수량으로 읽으면 95부를 놓치게 된다.

이 사례의 대상은 회화를 복제한 한정 인쇄물이다. 모든 오리지널 판화가 같은 방식으로 제작되거나 같은 비율의 AP를 둔다는 뜻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200과 295 가운데 어느 숫자가 진짜냐는 질문이 아니라, 각각 무엇을 센 숫자냐는 질문이다. 전자는 정규 번호 묶음, 후자는 미술관이 설명한 여러 배정분의 합계다. 표기와 발행 내역을 함께 읽으면 숫자는 충돌하지 않는다.

번호의 크기도 제작 순서를 그대로 보여주지는 않는다. 뉴질랜드 판화가 협회 Print Council Aotearoa New Zealand는 인쇄가 한 번에 이루어지거나 번호 순서대로 진행될 필요는 없다고 설명한다. 따라서 1/50이라는 표기만으로 가장 먼저 찍은 종이, 50/50만으로 판이 가장 닳았을 때 찍은 종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 앞 번호를 품질 순위로 바꾸는 순간, 제작 기록에 없는 정보를 덧붙이게 된다.

프루프라는 단어가 모두 미완성을 뜻하지는 않는다

프루프에는 제작 중 상태를 확인하는 인쇄본도 있지만, 완성된 에디션과 구분해 보관하는 인쇄본도 있다. AP와 BAT를 모두 시험판으로 번역하면 이 차이가 사라진다. 게티가 설명하는 BAT는 작가가 승인해 다른 인쇄본의 기준으로 삼는 본이다. 프랑스어 bon à tirer에서 온 말로, 이 상태를 기준으로 인쇄해도 좋다는 기능을 가진다. AP의 핵심이 배정이라면 BAT의 핵심은 승인이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에드 루샤 자료는 이 구별을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1989년 《That is Right》로 등록된 석판화 자료군에는 12개 이미지로 구성된 포트폴리오에서 나온 BAT 11점과 AP 1점, 그리고 메모가 남은 인쇄본 4점이 포함돼 있다. 같은 이미지가 16차례 연속 변한 기록이라는 뜻은 아니다. 미술관은 작업 중 인쇄본에 연필 지시가 남아 있으며, 최종 인쇄본과 비교하면 색조나 글자 크기의 조정이 드러난다고 설명한다.

이 자료에서 작업 메모가 있는 종이는 수정할 지점을 전달하고, BAT는 승인한 결과의 기준이 되며, AP는 작가에게 남겨 둔 최종 인쇄본이다. 한 단어로 모두 프루프라고 부를 수 있어도 세 종이가 제작 과정에 참여하는 방식은 다르다. AP를 미완성 초안으로만 이해하면 작가용 완성본을 놓치고, BAT를 작가 몫의 다른 이름으로만 이해하면 인쇄소와 작가 사이의 승인 절차를 놓친다.

반대로 BAT라는 글자만 보고 다른 인쇄본보다 무조건 더 선명하거나 더 가치 있다고 결론 내릴 이유도 없다. 기준으로 승인됐다는 역할과 지금 눈앞의 종이가 어떤 상태인지는 서로 다른 질문이다. 표기가 알려주는 범위에서 멈추는 것이 감상을 제한하는 일은 아니다. 오히려 어떤 차이는 기록에서 확인하고 어떤 차이는 실제 종이를 살펴봐야 하는지 나누게 해 준다.

번호를 읽은 뒤에는 같은 기록을 보고 있는지 확인한다

전시 캡션이나 판매 설명을 읽을 때는 작가와 작품명에 이어 제작 연도, 기법, 발행자, 에디션 내역을 맞춰 보는 순서가 유용하다. 이미지가 닮았다고 같은 판본이라는 보장은 없다. 게티는 에디션을 식별할 때 작품 전집인 카탈로그 레조네와 대조하거나 종이, 워터마크, 발행자 등의 정보를 비교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서명과 번호는 그 조사에 쓰는 단서이지 조사를 대신하는 인증서가 아니다.

독자가 메모할 항목은 세 가지면 충분하다. 먼저 50부라는 수량이 정규 번호 묶음만을 말하는지 전체 발행 내역을 말하는지 적는다. 다음으로 AP나 BAT가 있다면 해당 제작 기록에서 부여한 뜻을 확인한다. 마지막으로 확인하지 못한 부분은 비워 둔다. AP가 몇 부인지 설명이 없는데 익숙한 비율을 대입하거나, 서명이 보인다는 이유로 진위를 확정할 필요는 없다.

이렇게 읽으면 서로 다른 질문이 분리된다. 12/50과 AP 2/5의 비교는 소속된 묶음의 문제이고, AP와 BAT의 비교는 배정과 승인의 문제다. 어느 종이가 더 잘 인쇄됐는지, 보존 상태가 어떤지, 출처가 입증되는지는 따로 확인해야 한다. 판화의 작은 글자를 읽는 목적은 보이지 않는 서열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한 장의 종이가 어떤 제작·발행 기록에 연결되는지 찾는 데 있다.

출처 및 참고자료

Getty CDWA — State: AP와 BAT의 정의

Getty CDWA — Edition: 번호와 판본 식별

The Met — Ed Ruscha, That is Right, 1989

Norman Rockwell Museum Store — 한정 인쇄물과 에디션 구성

Print Council Aotearoa New Zealand — Printmaking Terminolog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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