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동안 4만 장을 찍었다. 에드 앳킨스가 기록한 사라지는 시간

우리는 사진을 찍으면 그 순간이 영원히 남는다고 생각한다. 가족과 함께한 여행, 아이가 처음 걸었던 날, 별다를 것 없는 어느 오후까지. 카메라에 담긴 장면은 시간이 지나도 다시 꺼내볼 수 있다. 하지만 사진이 정말 시간을 붙잡아 두는 것일까?
영국 현대미술가 에드 앳킨스(Ed Atkins)는 이 익숙한 믿음을 조금 다른 방식으로 바라본다.
그는 덴마크의 한 주택 정원에 골판지로 작은 무대를 만들었다. 그리고 딸의 방 창가에 카메라를 설치해 한 달 동안 1분에 한 장씩 사진을 찍었다. 그렇게 쌓인 4만 3,200장의 사진에는 특별한 사건이 등장하지 않는다. 날씨가 바뀌고, 식물이 자라고, 처음에는 멀쩡했던 골판지 구조물이 서서히 무너질 뿐이다.
이 기록을 30분짜리 영상으로 만든 작품이 《Passive Mech》(2026)다.
2026년 10월 31일까지 서울 한남동 글래드스톤 갤러리에서 열리는 에드 앳킨스의 한국 첫 개인전 《1 day in space》는 이 영상을 중심으로 사진, 조각, 프로타주 등 다양한 작업을 소개한다.
흥미로운 것은 디지털 기술로 정교한 가상의 인간을 만들어왔던 작가가 이번에는 가족의 생활과 손으로 만든 사물처럼 지극히 현실적인 것들을 바라본다는 점이다.
4만 3,200장의 사진이 기록한 것은 무엇일까?
《Passive Mech》의 출발점은 복잡하지 않다.
에드 앳킨스는 덴마크 질랜드에 있는 가족의 주택 정원에 골판지로 무대처럼 생긴 구조물을 설치했다. 그리고 그 모습을 한 달 동안 같은 자리에서 촬영했다.
1분에 한 장씩 촬영한 사진은 총 4만 3,200장. 시간으로 계산하면 정확히 30일에 해당하는 기록이다.
이 사진들을 초당 24프레임으로 재생하면 약 30분 분량의 영상이 된다.
우리가 일상에서 체감하는 한 달이라는 시간이 하나의 짧은 영화처럼 압축되는 것이다.
그런데 화면에서 벌어지는 일은 생각보다 소박하다.
바람과 비를 맞은 구조물은 점차 형태를 잃고, 주변 식물은 계절의 변화에 따라 성장한다. 햇빛의 방향과 그림자도 달라진다. 누군가 골판지 무대를 공격하거나 의도적으로 부수는 장면이 중심에 놓인 것은 아니다.
구조물은 그 자리에 존재하는 것만으로 조금씩 달라진다.
이것이 작품을 이해하는 중요한 지점이다.
우리는 보통 변화가 일어나려면 특별한 사건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실제 생활에서는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보이는 날에도 수많은 변화가 발생한다.
몸은 조금씩 나이를 먹고, 오래 사용한 물건에는 흔적이 남으며, 계절이 바뀌는 동안 익숙한 공간의 모습도 달라진다.
《Passive Mech》는 우리가 알아차리지 못할 만큼 느리게 진행되는 변화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이미지로 바꾼다.

사진은 시간을 보존할까, 사라짐을 보여줄까?
사진에는 흥미로운 모순이 있다.
카메라로 촬영한 장면은 오래 보존할 수 있지만, 그 사진에 담긴 시간 자체는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예를 들어 어린 시절의 사진을 본다고 해서 그때로 돌아갈 수는 없다. 사진은 과거의 모습을 보여주지만, 동시에 그 순간이 이미 지나갔다는 사실도 알려준다.
에드 앳킨스의 작업은 이러한 사진의 성질을 전면에 드러낸다.
한 달 동안 찍은 수많은 사진 가운데 어느 한 장을 꺼내면 그날의 풍경은 여전히 온전하게 남아 있다.
하지만 모든 사진을 순서대로 이어 붙이면 전혀 다른 장면이 나타난다.
구조물은 무너지고, 주변 환경은 변하며, 어제 있었던 모습이 오늘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한 장의 사진은 순간을 고정하지만, 여러 장을 연결한 영상은 그 순간이 얼마나 빠르게 사라지는지 보여주는 셈이다.
여기서 사진과 영상의 차이도 흥미롭게 드러난다.
사진은 특정 순간을 오래 바라볼 수 있게 하지만, 영상에서는 이미지가 빠르게 지나간다. 《Passive Mech》를 구성하는 개별 사진은 초당 24장의 속도로 재생될 때 각각 약 0.04초만 화면에 등장한다.
그 짧은 순간에 사진 속 모든 디테일을 살펴보기는 어렵다.
대신 관객은 구조물이 무너지는 전체적인 변화와 시간의 흐름을 경험하게 된다.
같은 이미지라도 어떻게 보여주느냐에 따라 우리가 발견하는 정보가 달라지는 것이다.
왜 하필 골판지로 만든 무대였을까?
작품의 중심에 놓인 구조물은 철이나 콘크리트가 아닌 골판지로 만들어졌다.
골판지는 익숙한 재료다. 택배 상자나 포장재로 사용되며, 쉽게 자르고 붙일 수 있다. 아이들이 장난감이나 작은 집을 만드는 데 활용하기도 한다.
그만큼 특별한 재료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하지만 야외에 설치된 골판지는 비와 습기, 바람에 오래 견디기 어렵다.
에드 앳킨스는 이러한 성질을 가진 재료로 하나의 무대를 만들고, 자연스럽게 변화하도록 두었다.
작가는 2026년 9월 엘르 코리아와의 인터뷰에서 이 구조물이 아이들과 함께해 온 만들기의 경험과 연관된다고 설명했다. 동시에 건축과 연극, 조각적인 형태를 떠올리면서도 특정한 사물 하나로 해석되지 않기를 바랐다고 밝혔다.
이 설명을 알고 보면 골판지 무대는 조금 다른 존재가 된다.
완성된 건축물도 아니고, 실제 공연을 위한 무대도 아니다. 특별한 기능을 수행하지 않으면서 그 자리에 놓여 있는 구조물이다.
그러나 그것을 관찰하는 카메라가 등장하면서 구조물은 이야기의 중심이 된다.
사람이 등장하지 않아도 하나의 주인공처럼 느껴질 수 있는 것이다.
전통적인 영화에서는 배우의 행동이 이야기를 이끌지만, 이 영상에서는 사물이 겪는 변화가 서사를 대신한다.
특별한 대사나 극적인 사건이 없어도 시간만으로 이야기가 만들어질 수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가상의 인간을 만들던 작가가 현실로 돌아온 이유
에드 앳킨스를 이해하려면 그가 이전에 어떤 작품을 만들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1982년 영국 옥스퍼드에서 태어난 그는 컴퓨터 그래픽으로 만든 영상과 애니메이션으로 알려진 현대미술가다.
실제 사람처럼 움직이고 표정을 짓는 디지털 인물을 통해 인간의 감정과 신체, 죽음과 상실을 다뤄왔다.
그의 작업에서 특히 흥미로운 것은 화면 속 인물이 지나치게 사실적으로 보일 때 발생하는 낯선 감각이다.
피부의 질감이나 얼굴의 움직임은 실제 사람과 비슷하지만, 우리는 그 존재가 컴퓨터로 만들어진 이미지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아주 사실적으로 표현된 가상의 몸이 반드시 살아 있는 인간처럼 느껴지는 것은 아니다.
대표적인 작품 《The Worm》(2021)에서는 컴퓨터로 만든 인물이 등장하지만, 그 바탕에는 작가와 어머니가 나눈 실제 전화 통화가 있다.
《Pianowork 2》(2024)에서는 작가 자신의 모습을 정밀하게 재현한 디지털 인물이 피아노를 연주한다.
이처럼 에드 앳킨스는 오랫동안 인간의 신체와 감정을 디지털 이미지로 옮기는 과정에 관심을 가져왔다.
그렇다면 이번 전시는 그가 디지털 기술을 버리고 아날로그로 돌아섰다는 의미일까?
그렇게 단정하기는 어렵다.
작가는 2026년 9월 오큘라와의 인터뷰에서 이번 작업이 이전 작품들과 완전히 다른 것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Passive Mech》 역시 디지털 사진을 사용하고, 기술을 통해 현실을 다시 구성한다는 점에서 기존의 관심과 이어져 있다는 것이다.
변화한 것은 기술의 존재보다 카메라가 바라보는 대상이다.
이전에는 디지털 기술로 만들어진 신체가 중심이었다면, 이번에는 실제 가족이 생활하는 공간과 오래 사용해 온 물건들이 작품의 중요한 출발점이 된다.
아무도 없는 침대에서 가족의 모습을 발견하다
이번 전시에서는 영상과 함께 프로타주(Frottage) 작업도 소개된다.
프로타주는 울퉁불퉁한 표면에 종이를 올리고 연필이나 흑연 등으로 문질러 그 형태를 옮기는 기법이다.
어릴 때 동전 위에 종이를 올리고 연필로 문질러 동전의 무늬를 드러냈던 경험을 떠올리면 이해하기 쉽다.
에드 앳킨스는 이 방식을 가족이 사용한 침대 시트에 적용했다.
아이들이 학교에 간 뒤 침대 위에 종이를 덮고 흑연으로 문질러 주름과 표면의 형태를 기록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작업에서는 사람의 모습이 직접적으로 등장하지 않는다.
하지만 침대 시트에 남은 주름과 눌린 흔적은 누군가 그곳에서 잠을 자고 생활했다는 사실을 짐작하게 만든다.
여기서 사진과 프로타주는 서로 다른 방식으로 연결된다.
사진은 빛을 통해 대상을 기록한다. 반면 프로타주는 종이가 사물의 표면에 닿는 접촉과 마찰을 통해 형태를 남긴다.
두 방법 모두 이미 지나간 순간의 일부를 보존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하지만 어느 쪽도 그 순간의 경험 전체를 다시 만들어낼 수는 없다.
침대에 누워 있던 사람의 체온이나 그날의 감정은 기록되지 않는다. 남아 있는 것은 주름과 형태뿐이다.
그런데 바로 그 불완전함 때문에 우리는 보이지 않는 사람을 떠올리게 된다.
존재하지 않는 것을 상상하도록 만드는 기록이라는 점에서 이 작업은 일반적인 가족사진과는 또 다른 방식으로 다가온다.
시리얼 상자와 아이들의 장난감이 예술이 되는 순간
이번 전시에는 집에서 흔히 발견할 수 있는 사물을 조합한 작은 작품들도 등장한다.
시리얼 상자, 동물 그림이 있는 플래시카드, 골판지 조각, 접착제와 사진 등이 주요 재료다.
갤러리의 작품 목록에는 《Black box》, 《Stage》, 《Black box timelapse (Spider)》, 《Kit》 등의 작업이 포함돼 있다.
이런 작품들을 살펴볼 때 중요한 것은 재료가 비싸거나 특별한가가 아니다.
본래 시리얼 상자는 식품을 포장하기 위해 만들어지고, 플래시카드는 아이들이 놀이하거나 무언가를 배우는 데 사용된다.
그러나 에드 앳킨스는 이러한 물건을 원래의 용도에서 분리해 새로운 형태로 조합한다.
이러한 방식은 아상블라주(Assemblage)라는 미술 기법과도 연결된다. 서로 다른 사물을 결합해 하나의 작품으로 구성하는 방식이다.
흥미로운 것은 그 사물들이 단순히 발견된 물건이 아니라 작가의 생활 속에서 사용됐다는 사실이다.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만들었던 것, 아이들이 손으로 만졌던 것, 평범한 하루를 보내는 동안 남겨진 물건들이 작품의 재료가 된다.
우리는 보통 중요한 기억을 남기기 위해 특별한 물건을 보관한다.
여행에서 구매한 기념품이나 졸업사진, 누군가에게 받은 편지처럼 의미가 분명한 사물들이다.
하지만 실제로 오랜 시간이 지난 뒤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것은 예상하지 못한 물건일 때도 있다.
오래된 영수증이나 장난감, 버리지 못한 상자 하나가 특정한 시절을 떠올리게 만드는 것이다.
에드 앳킨스의 작은 조각들은 그런 사적인 기억이 어떻게 예술의 재료로 바뀔 수 있는지 생각하게 한다.
아버지의 작품이 함께 전시된 이유
이번 전시에는 작가의 아버지 필립 앳킨스(Philip Atkins)가 제작한 《Blue (by Philip Atkins)》도 포함돼 있다.
1985년부터 2000년 사이에 제작된 이 작품은 골판지를 바탕으로 여러 재료를 사용한 작업이다.
에드 앳킨스는 오큘라와의 인터뷰에서 이 작품이 자신이 아주 어릴 때부터 생활하던 공간의 벽에 걸려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 사실은 이번 전시를 이해하는 데 특별한 단서가 된다.
전시장에 놓인 가족의 흔적은 반드시 최근에 만들어진 것만이 아니다.
오래전부터 가까이 두고 바라봤던 아버지의 작품 역시 작가의 삶과 시각적 경험을 형성한 일부다.
그는 이전 작업에서도 아버지의 죽음과 가족의 기억을 다뤄왔다.
2025년 테이트 브리튼에서 열린 회고전에는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기 전 작성한 일기를 바탕으로 한 장편 영상 《Nurses Come and Go, But None for Me》가 포함됐다.
개인의 상실을 작품으로 옮기는 작업은 이번 서울 전시에서 갑자기 시작된 것이 아니다.
다만 과거에는 가족의 기억이 디지털 인물이나 영상의 형식을 통해 등장했다면, 이번에는 실제 생활에서 사용된 물건과 사진, 오래된 작품이 보다 직접적으로 소개된다.
세상을 떠난 사람이 남긴 물건은 그 사람 자체를 대신할 수 없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 물건을 통해 함께했던 시간을 떠올린다.
이번 전시의 사진과 골판지, 침대 시트의 흔적은 모두 그런 기억의 불완전한 성질과 연결해 읽을 수 있다.
영상에서 들리는 소리는 어디에서 왔을까?
《Passive Mech》에서 중요한 것은 화면뿐만이 아니다.
영상에는 작가가 가족과 함께한 생활 속에서 녹음한 다양한 소리가 사용된다.
집 안에서 들리는 사람들의 목소리, 생활 소음, 음악, 이동 중에 기록한 소리가 짧은 조각으로 편집돼 있다.
작가는 오큘라 인터뷰에서 촬영 기간 대부분 마이크를 켜 두었고, 약 1분 단위의 녹음에서 짧은 부분을 잘라 다시 연결했다고 설명했다.
여기에 과거에 녹음한 자료와 자신의 어린 시절 기록도 활용했다.
화면 속 골판지 무대는 일정한 간격으로 촬영됐지만, 소리는 훨씬 자유롭게 재구성된 것이다.
이런 구성은 흥미로운 시간의 차이를 만든다.
화면에서는 한 달 동안 일어난 일이 순서대로 진행된다. 그러나 소리에는 서로 다른 시간과 장소에 남아 있던 기록이 겹쳐질 수 있다.
우리의 기억 역시 이와 비슷하게 작동할 때가 있다.
어떤 장소를 떠올리면 그곳에서 실제로 들었던 음악뿐 아니라 한참 뒤에 그 장소와 연결된 노래까지 함께 생각날 수 있다.
기억은 카메라처럼 모든 사건을 정확한 순서대로 보관하지 않는다.
여러 시기의 감각이 뒤섞이고, 시간이 지난 후 새로운 의미를 얻기도 한다.
《Passive Mech》의 소리는 하나의 장면이 반드시 하나의 시간에만 속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생각하게 만든다.
《1 day in space》라는 제목은 무슨 뜻일까?
전시 제목을 한국어로 옮기면 ‘공간 속의 하루’ 정도로 읽을 수 있다.
하지만 이 표현을 특정한 하나의 의미로 고정할 필요는 없다.
작품을 구성하는 사진들은 실제로 한 달 동안 촬영됐고, 그것이 30분짜리 영상으로 압축된다.
전시에는 서로 다른 시간에 만들어진 가족의 물건과 기록도 함께 등장한다.
그런 점에서 이 제목은 우리가 시간과 공간을 어떻게 경험하는지 생각하게 한다.
같은 집에서 보낸 하루라도 그날의 감정에 따라 기억에 남는 모습은 달라질 수 있다.
어떤 날은 아주 길게 느껴지고, 어떤 날은 특별한 기억 없이 빠르게 지나간다.
그리고 몇 년 뒤 사진을 꺼내면 당시에는 별것 아니라고 생각했던 장면이 오히려 중요해 보일 수도 있다.
다만 이것은 작품의 구성에서 출발한 하나의 해석이다. 제목의 유일한 정답이나 작가가 확정한 상징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이번 전시를 관통하는 더 분명한 질문은 이미지가 지나간 시간을 어떤 방식으로 다시 경험하게 만드는가에 있다.
에드 앳킨스 《1 day in space》 전시 정보
에드 앳킨스의 한국 첫 개인전 《1 day in space》는 2026년 8월 31일부터 10월 31일까지 글래드스톤 서울에서 열린다.
전시 장소는 서울 용산구 이태원로55가길 1에 위치한 글래드스톤 갤러리의 새로운 한남동 공간이다.
갤러리가 안내하는 일반 운영시간은 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다. 일요일과 월요일은 정기 운영일에 포함되지 않는다.
이번 전시는 약 30분 분량의 영상 작품 《Passive Mech》를 중심으로 다양한 사진과 프로타주, 작은 조각 작품을 함께 소개한다.
영상 전체를 관람하고 다른 작품의 재료와 제작 방식을 비교해 보고 싶다면 충분한 시간을 확보하는 편이 좋다.
일반 관람료와 별도 예약 필요 여부는 현재 확인한 공식 전시 안내만으로 확정하기 어렵다. 방문 전에 갤러리에 문의하거나 공식 홈페이지의 최신 안내를 확인하는 것이 정확하다.
특히 이번 전시는 글래드스톤의 새로운 한남동 공간에서 개최되므로, 이전 서울 갤러리 주소와 혼동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우리가 사진으로 정말 남기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
에드 앳킨스의 《1 day in space》에는 눈부신 사건이나 거대한 기술적 성취를 과시하는 장면이 중심에 놓이지 않는다.
작가는 오히려 너무 평범해서 쉽게 지나치는 것들을 오래 바라본다.
서서히 무너지는 골판지, 사람이 떠난 침대에 남은 주름, 가족과 함께 만들었던 작은 물건, 생활 속에서 우연히 녹음된 목소리까지.
그것들은 특별한 기록을 남기기 위해 만들어진 사물이 아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사소한 것들이 오히려 누군가의 삶을 기억하게 만드는 중요한 단서가 될 수 있다.
우리는 이제 언제 어디서든 사진을 찍고 영상을 남길 수 있다.
그렇다고 모든 순간을 더 잘 기억하게 되는 것은 아니다. 수천 장의 사진이 휴대전화에 저장돼 있어도 정작 어떤 날의 감정이나 분위기를 정확하게 떠올리기는 어려울 수 있다.
에드 앳킨스의 이번 작업은 그런 상황에서 한 가지 질문을 남긴다.
우리가 기억하고 싶은 것은 사진 속에 보이는 장면일까, 아니면 그 장면이 만들어질 때 함께 존재했던 시간일까?
카메라는 지나간 시간을 되돌릴 수 없다.
하지만 이미 사라졌다고 생각한 순간을 다시 바라보게 만들 수는 있다.
《1 day in space》가 흥미로운 이유는 바로 그 가능성을 조용하지만 구체적인 이미지로 보여준다는 데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