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사마 야요이의 거울 방은 어떻게 무한해질까? 《인피니티 미러 룸》의 원리

작은 방 안에서 불빛이 끝없이 멀어지는 듯 보인다. 쿠사마 야요이의 《인피니티 미러 룸》은 거울이 조명과 물체의 모습을 거듭 반사하면서 이런 장면을 만든다. 실제 공간이 늘어나는 것은 아니다. 눈에 들어오는 공간의 상이 실제 방보다 훨씬 깊게 이어진다.
그런데 불빛 말고 다른 것을 따라가면 이 작품이 조금 다르게 보인다. 관람자가 서는 발판이나 바깥을 들여다보게 하는 창도 거울 속에서 반복된다. 몸이 머무는 자리를 제한하는 경계가 동시에 끝없는 공간의 일부처럼 나타나는 것이다. 로스앤젤레스 브로드 미술관의 두 작품을 비교하면, 쿠사마의 ‘무한’이 빛뿐 아니라 그 빛을 보는 자리까지 다룬다는 사실을 읽을 수 있다.
거울이 늘리는 것은 물체가 아니라 상이다
거울 두 면 사이에서는 한쪽에 비친 모습이 다른 쪽에 다시 비칠 수 있다. 반복된 상은 실제 물체보다 뒤쪽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멤피스대학교의 ‘인피니티 미러’ 시연도 전구와 거울을 이용해 이 원리를 설명한다. 다만 그 시연의 투과성 거울 구성과 쿠사마 작품의 실제 구조가 같다는 뜻은 아니다. 작품마다 거울의 각도, 광원과 관람 위치가 다르다. 멤피스대학교 물리학 시연
따라서 사진에 보이는 빛의 점을 세어 실제 LED 개수로 옮길 수는 없다. 같은 광원의 상이 여러 번 포함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실의 반사는 손실 없이 영원히 지속되지도 않는다. 거울 방의 ‘무한’은 끝이 없는 실내를 시공했다는 말보다, 반복되는 상 속에서 끝을 바로 가늠하기 어렵게 만든다는 표현에 가깝다.
1965년, 손으로 만들던 반복을 공간으로 옮기다
쿠사마의 첫 거울 방 《Phalli’s Field》는 1965년 뉴욕의 카스텔레인 갤러리에서 선보였다. 허시혼 미술관은 그에 앞서 작가가 천으로 만든 조형물을 수없이 꿰매고 가구 등에 붙였으며, 반복 제작의 부담을 거울로 확장했다고 설명한다. 물체를 하나씩 더 만드는 방식에서, 만들어진 물체의 상이 되풀이되도록 하는 방식으로 옮겨간 것이다. 허시혼 미술관의 작품 해설
이 변화는 이후 조명 작품을 이해하는 출발점이 된다. 반복되는 것은 발광 장치만이 아니다. 거울 앞에 놓인 물체와 공간의 경계도 장면에 들어간다. 그 차이를 살펴보기 위해 브로드가 공개한 《The Souls of Millions of Light Years Away》(2013)와 《Longing for Eternity》(2017)의 대표 사진을 읽어보자. 현장 체험을 대신하려는 것이 아니라, 사진에 드러난 경계와 작품 설명을 함께 대조하는 방식이다.
들어가는 방: 발판의 반복은 통로의 확장이 아니다
브로드의 《The Souls of Millions of Light Years Away》 소장품 페이지에는 거울, LED 조명 시스템, 아크릴 구체, 물 등이 재료로 기재돼 있다. 같은 페이지의 사진에는 작은 불빛이 여러 방향으로 이어지고, 아래쪽 가운데에 끝이 둥글게 마감된 발판 형태가 보인다. 좌우에도 비슷한 바닥 형태가 되풀이된다. 작품 정보와 공식 사진
여기서 눈여겨볼 것은 빛 사이에 남은 회색 면이다. 빛만 보면 거울 속 깊이를 우주처럼 받아들이기 쉽지만, 발판 형태를 따라가면 사람이 서는 장소의 윤곽도 반복된 장면에 포함돼 있음을 알 수 있다. 사진 속 바닥 모양을 각각 독립된 통로로 세면 실제보다 많은 이동 공간이 있는 것으로 잘못 읽게 된다. 반사된 발판은 걸어 들어갈 수 있는 바닥을 추가하지 않는다.
이 작품은 실제로 안에 들어가 관람하는 방이다. 미술관은 입장 뒤 문이 닫힌다고 안내한다. 하지만 대표 사진 한 장으로 출입구의 정확한 위치나 관람자의 이동 범위 전체를 복원할 수는 없다. 사진에서 보이는 발판 형태의 반복과, 모든 관람자가 어디에 서서 어느 쪽을 보게 되는가는 다른 질문이다. 전자는 이미지에서 확인되지만 후자는 설치·운영 정보가 더 필요하다.
들여다보는 방: 세 개의 창이 여러 개로 보일 때
《Longing for Eternity》는 바깥에서 육각형 공간 안을 들여다보는 작품이다. 브로드의 2018년 소장 발표 자료는 둥근 관람 창이 세 개라고 명시한다. 안팎이 거울로 된 상자와 LED 조명이 작품을 구성한다. 브로드의 2018년 소장 발표, 2쪽
그런데 소장품 페이지의 파블로 엔리케스 촬영 사진에는 세 개보다 훨씬 많은 원형과 타원형이 보인다. 사진 가장자리에는 가까운 창의 굵은 곡선 테두리가 남고, 그 안쪽으로 작은 창 형태들이 여러 크기와 각도로 반복된다. 밝은 실내의 벽과 바닥처럼 보이는 면도 일부 원 안에 나타난다. 작품 정보와 파블로 엔리케스의 공식 사진
실제 창 수와 사진 속 원의 수를 비교하면, 보이는 원을 모두 별도의 구멍으로 읽을 수 없다는 점이 분명해진다. 다만 도면 없이 어느 원이 어느 창의 몇 번째 반사인지까지 붙일 수는 없다. 여기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창의 형태와 그 너머 장면도 반복에 포함된다는 사실이다.
창은 두 역할을 겹쳐 가진다. 가까운 테두리는 사진에 들어오는 장면을 잘라내고, 안쪽에 되풀이된 창의 상은 그 제한된 장면을 다시 늘려 보인다. 바깥을 향한 구멍은 거울의 연속을 끊는 자리이면서, 또 다른 거울에서는 반복되는 무늬가 된다. 단순히 ‘몸은 밖에 있고 눈만 안을 본다’는 구분보다 한 단계 구체적인 차이다.
같은 질문을 두 사진에 적용해 보면
두 작품을 읽는 순서를 맞춰보자. 먼저 빛이 아닌 경계를 찾는다. 《The Souls of Millions of Light Years Away》에서는 회색 발판의 끝, 《Longing for Eternity》에서는 가까운 창의 테두리다. 다음으로 그와 비슷한 형태가 화면의 어디에 반복되는지 따라간다. 끝으로 그 반복이 실제로 발을 옮길 곳이나 별도의 관람 창을 늘렸는지 묻는다.
답은 두 경우 모두 아니다. 다만 제한하는 대상이 다르다. 발판은 몸이 놓일 바닥의 범위를, 창은 안쪽을 들여다보는 개구부의 범위를 드러낸다. 두 사진에서는 그 경계가 완전히 사라지기보다, 거울 속에 여러 번 다시 나타나면서 실제 공간을 세기 어렵게 한다. ‘경계가 안 보이기 때문에 무한하다’는 설명만으로는 놓치기 쉬운 부분이다.
이 비교는 동일한 눈높이에서 촬영한 실험이 아니다. 두 공식 사진의 촬영 위치와 조명 조건도 같다고 볼 수 없다. 따라서 어느 작품이 더 몰입감을 주는지, 몸이나 다른 관람자가 얼마나 가려지는지를 수치처럼 비교하지 않는다. 여기서 따라갈 수 있는 것은 사진에 남은 발판과 창의 반복이다.
‘무한’을 보는 몸에는 시간이 있다
브로드는 2026년 10월 22일 확인한 안내에서 《The Souls of Millions of Light Years Away》를 한 번에 최대 네 명이 1분 동안 관람한다고 설명한다. 점멸하는 빛과 어두운 밀폐 공간에 불편을 느끼는 사람을 위한 주의도 있다. 이는 해당 작품의 운영 조건이며, 다른 거울 방에 공통으로 적용되는 규칙은 아니다. 브로드 관람 안내
쿠사마는 브로드 인터뷰에서 첫 거울 방을 거울을 이용한 시각예술의 공간 탐구에서 출발한 작업으로 설명했다. 그 탐구를 읽는 데 모든 관람자가 같은 감정을 느낀다고 전제할 필요는 없다. 작가 인터뷰
빛이 어디까지 이어지는지 보는 대신, 자신이 설 수 있는 바닥과 들여다보는 창을 찾아보면 어떨까. 유한한 공간을 알려주는 그 윤곽마저 반복에 참여한다. 쿠사마의 거울 방은 실제 경계를 없애지 않고도, 경계의 상을 여러 겹으로 만들어 공간을 다르게 읽게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