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섭은 왜 담뱃갑 은박지에 그림을 그렸을까?

이중섭은 왜 담뱃갑 은박지에 그림을 그렸을까?

이중섭의 은지화를 ‘가난해서 종이 대신 담뱃갑 포장지에 그린 그림’이라고만 설명하면, 그가 재료를 어떻게 다뤘는지는 남지 않는다. 국립현대미술관은 은지화의 시작을 부산 피란 시절 재료가 부족했던 상황과 연결해 추정하지만, 정확한 계기가 확정된 것은 아니라고 설명한다. 재료 선택의 배경과 작품의 제작 방법은 나누어 볼 필요가 있다.

실마리는 소장품 기록의 짧은 재료 항목에 있다. 미술관은 세 은지화를 ‘은지에 새김, 유화 물감’으로 등록했다. 반면 그중 한 작품과 제목이 같은 종이 그림은 ‘종이에 수채물감, 크레파스’다. 물고기·게·아이들이 반복되어도, 표면에 선과 색을 남기는 방법까지 같지는 않다.

같은 제목을 가진 두 작품부터 구별하기

국립현대미술관 소장품에는 《물고기와 게와 아이들》이라는 제목이 정확히 같은 작품이 둘 있다. 관리번호 10042는 은지화, 10072는 종이에 그린 작품이다. 같은 제목으로 검색되는 이미지를 보고 어느 쪽의 재료 설명이든 붙이면 안 되는 이유다.

네 작품의 등록 정보를 같은 순서로 옮기면 차이가 분명해진다. 아래 규격은 개별 소장품 페이지의 표기다. 해당 필드에는 단위와 가로·세로 순서가 따로 제시되어 있지 않다.

  • 03820 《물고기와 아이들(은지화)》: 1950년대. 은지에 새김, 유화 물감. 규격 15×9. 부문 ‘회화 II’. 소장품 기록
  • 10034 《게와 가족》: 1950년대. 은지에 새김, 유화 물감. 규격 10×15. 부문 ‘회화 II’. 소장품 기록
  • 10042 《물고기와 게와 아이들》: 1950년대. 은지에 새김, 유화 물감. 규격 10×15. 부문 ‘회화 II’. 소장품 기록
  • 10072 《물고기와 게와 아이들》: 1950년대 전반. 종이에 수채물감, 크레파스. 규격 19.3×26.3. 부문 ‘드로잉’. 소장품 기록

10042와 10072는 제목은 같지만 재료·규격·분류가 모두 다르다. 여기서 얻을 수 있는 첫 번째 관람 기준은 소재로 매체를 짐작하지 않는 것이다. 물고기와 아이들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은지화인 것은 아니다. 또 종이 작품의 ‘1950년대 전반’이라는 표기가 더 구체적이라고 해서 두 작품 중 어느 것이 먼저였는지, 다른 한 작품의 밑그림이었는지까지 알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새김과 유화 물감’ 대 ‘크레파스 선과 수채물감’

은지화의 ‘은지’는 귀금속 은으로 만든 종이라는 뜻으로 읽어서는 안 된다. 국립현대미술관의 해설은 담뱃갑 속 광택 있는 알루미늄 포장지를 설명한다. 제작 방식은 뾰족한 도구로 선을 새기고, 물감을 바른 뒤 닦아 새긴 자리에 색이 남도록 하는 것이다. 은빛 재료에 무엇을 그렸는가와 함께, 표면을 눌러 만든 선을 어떻게 드러냈는가가 중요해진다. MMCA 은지화 해설

종이 작품 10072의 제작 설명은 다른 순서를 보여준다. 미술관은 이 그림을 첫째 아들 이태현에게 보낸 편지화로 소개한다. 크레파스로 인물과 물고기·게의 윤곽을 그리고, 그 선묘 위에 푸른 수채물감을 도포했다고 설명한다. 따라서 비교는 ‘은지에는 새기고 종이에는 붓으로 그린다’라는 이분법으로 끝나지 않는다. 종이 그림에도 크레파스로 만든 선과 그 위에 더한 물감이 함께 있다.

두 작품군에서 공통으로 물을 수 있는 질문은 ‘선과 색이 어떤 순서와 관계로 장면을 만드는가’다. 은지화는 표면에 새긴 선과 유화 물감의 관계로, 종이 편지화는 크레파스 선과 수채물감의 관계로 설명된다. 같은 아이들과 바다 생물이 다른 재료에서도 등장한다는 사실을 확인한 뒤, 재료에 따라 달라지는 제작 행위를 비교할 수 있다.

같은 재료와 규격이어도 장면은 달라진다

이번에는 제목이 다른 은지화 두 점을 나란히 읽어 보자. 10034 《게와 가족》과 10042 《물고기와 게와 아이들》은 모두 ‘은지에 새김, 유화 물감’, 규격 10×15로 등록돼 있다. 여기서는 재료와 규격을 같게 놓고 구성의 차이에 주목할 수 있다.

미술관은 《게와 가족》의 위쪽에서 포장지의 접힌 흔적과 간결한 선이 바다를 이루고, 가운데와 아래쪽에는 네 가족과 여러 게가 화면을 채운다고 설명한다. 반면 《물고기와 게와 아이들》에서는 다섯 소년이 서로 얽혀 원형 구도를 만들고, 물고기와 게가 왼쪽에 배치된다고 해설한다. ‘네 가족과 바다의 배경’과 ‘다섯 소년의 원형 구성’은 같은 등록 규격 안에서도 다른 장면을 조직하는 방식이다.

이 대조는 금속 포장지라는 재료가 구도를 하나로 결정하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준다. 같은 재료를 썼다는 사실만으로 가족의 수나 인물의 배치까지 설명할 수는 없다. 동시에 같은 바다 소재를 그렸다는 이유로 두 그림을 같은 가족 장면으로 뭉뚱그릴 수도 없다. 작품명뿐 아니라 인물 수와 배열을 다룬 개별 해설이 필요한 까닭이다.

포장지의 흔적도 작품마다 다르게 읽기

03820 《물고기와 아이들(은지화)》에 관해 미술관은 구김뿐 아니라 뜯긴 부분의 자연스러운 선이 남아 있다고 설명한다. 《게와 가족》에서는 접힘과 바다의 선, 《물고기와 게와 아이들》에서는 구김과 인물 윤곽의 관계를 설명한다. 이를 한데 묶어 ‘은지화에는 구김이 있다’고만 요약하면, 흔적이 각 장면과 맺는 구체적인 관계가 사라진다.

반대로 눈에 띄는 자국을 전부 작가가 새긴 선이라고 보아도 재료가 먼저 지녔던 상태를 놓치게 된다. 이 세 작품의 기관 해설을 함께 읽으면, 재료에 남은 자국과 그림을 위해 만든 선을 구분해 질문할 수 있다. 특정 자국이 어느 날 어떤 의도로 쓰였는지를 상상으로 채우는 것보다, 작품마다 설명된 흔적과 구성을 연결하는 편이 정확하다.

이중섭이 왜 은지에 그렸는가라는 질문에는 피란과 재료 부족이라는 배경이 있다. 하지만 그것만이 답의 전부는 아니다. 동명작 10042와 10072를 비교하면 같은 소재가 서로 다른 제작 방식으로 옮겨 갈 수 있음을 알 수 있고, 은지화 10034와 10042를 비교하면 같은 재료·규격 안에서도 구성은 달라짐을 알 수 있다. 은지화를 읽는 출발점은 버려진 재료의 사연을 아는 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어떤 표면에 어떤 선을 만들고 그 선으로 어떤 장면을 조직했는지 살펴보는 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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