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넬 2027 봄·여름 83개 룩 공개…가브리엘의 2.55와 ‘스모킹 트위드’

마티유 블라지가 샤넬 2027 봄·여름 컬렉션을 공개했다. 총 83개 룩으로 구성된 이번 시즌의 출발점은 새로운 유행이나 특정 시대 하나가 아니다. 젊은 시절의 가브리엘 샤넬부터 이후 ‘샤넬’이라는 이름을 만든 디자이너까지, 한 사람 안에 존재했던 여러 시기를 한 컬렉션 안에 겹쳐놓았다. CHANEL
그래서 런웨이에는 속옷처럼 가벼운 옷과 코르셋의 흔적, 남성복 테일러링, 1930년대식 이브닝웨어, 샤넬 슈트가 동시에 등장한다. 마지막에는 전통적인 트위드를 그대로 반복하는 대신 신축성을 가진 새로운 ‘smocked tweed’를 내놓았다. 과거를 복원하기보다 샤넬이 옷을 통해 추구했던 움직임과 자유를 지금의 소재 기술로 다시 만드는 방식이다.
83개 룩은 가브리엘 샤넬의 시간을 따라간다
이번 컬렉션의 공식 주제는 ‘La Conversation – Part Three – Different Faces of the Same Coin’이다.
블라지는 한 사람이 살아가면서 여러 모습으로 변하고, 이전의 자신이 다음의 자신 안에 계속 남는다는 생각에서 컬렉션을 시작했다. 그 대상이 이번에는 가브리엘 샤넬이다.
따라서 컬렉션은 특정 연대를 그대로 재현하는 역사극처럼 구성되지 않았다.
초기의 속옷과 저지, 에드워드 시대의 코르셋과 테일러링, 남성복에서 가져온 슈트, 1930년대식 드레스와 전후 샤넬 슈트가 하나의 시간순 전시처럼 명확하게 분리되지 않는다.
대신 서로 다른 시대의 흔적이 한 옷 안에 겹친다.
코르셋은 완전히 돌아오는 대신 보닝의 그림자 같은 선으로 남고, 과거의 페플럼과 칼라 러플, 몸을 감싸던 보디스의 곡선도 새로운 실루엣 안에 흔적으로 등장한다.
블라지가 이번 컬렉션을 ‘역사적인 컬렉션’이 아니라고 설명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가 다룬 것은 특정 시대의 샤넬이 아니라, 가브리엘이라는 한 인물이 여러 단계를 거쳐 ‘샤넬’이 되어가는 과정이다.
시작은 속옷이고 마지막은 샤넬 슈트다
컬렉션의 첫 부분에는 몸에 가장 가까운 옷이 등장한다.
저지 언더웨어와 가볍게 몸 위에 놓이는 소재는 가브리엘 샤넬이 여성복을 더 편안하게 만들기 시작했던 초기 생각과 연결된다. 이후 옷은 점차 테일러링과 드레스로 이동하고 마지막에는 샤넬을 가장 대표하는 슈트에 도착한다.
그 과정에서 남성복도 중요한 재료가 된다.
남성용 데이웨어와 이브닝웨어는 완성된 정장 형태로 옮겨오지 않는다. 가장자리를 그대로 드러낸 질레 형태로 해체되거나 바지와 결합되고, 일부는 펜슬 스커트 슈트로 다시 만들어졌다.
1930년대 스타일의 이브닝드레스에는 시퀸과 바이어스 커팅을 사용했고, 니트와 비즈를 결합한 드레스는 티셔츠처럼 가볍게 입을 수 있도록 구성했다.
여성복과 남성복, 속옷과 정장처럼 반대편에 있다고 생각하기 쉬운 옷들이 하나의 옷장 안으로 들어온 셈이다.

샤넬의 트위드에 ‘신축성’을 넣었다
이번 시즌에서 소재 자체로 가장 중요한 변화는 ‘smocked tweed’다.
트위드는 샤넬을 설명할 때 빠지기 어려운 소재지만, 블라지는 이번에 표면의 이미지보다 옷이 움직이는 방식에 손을 댔다.
새로운 스모킹 트위드는 신축성을 이용해 기존 트위드보다 가볍고 유연하게 몸을 따라 움직이도록 개발됐다. 공식 컬렉션 노트에서는 이를 현대 기술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해진 일종의 ‘퍼포먼스 가먼트’로 설명한다.
이 변화가 흥미로운 이유는 트위드를 완전히 새로운 소재로 교체하지 않았다는 데 있다.
멀리서 보면 여전히 샤넬 슈트의 익숙한 표면과 구조를 떠올릴 수 있다. 하지만 입었을 때는 늘어나고 움직이며 몸을 제한하지 않는 방향으로 재설계됐다.
샤넬의 코드를 없애는 대신 그 코드가 만들어졌던 이유를 다시 읽은 것이다.
가브리엘 샤넬이 코르셋과 무거운 옷에서 여성의 몸을 자유롭게 하려 했다면, 블라지는 그 생각을 오늘날의 직물 기술로 다시 적용했다.
구름은 여러 겹의 실크로 만들었다
가벼움은 트위드에만 적용되지 않았다.
이번 컬렉션에는 서로 다른 두께의 프린트 실크를 여러 겹 겹쳐 구름이 시간에 따라 움직이는 모습처럼 보이도록 만든 옷도 등장한다.
같은 기법 안에서 아침과 골든아워, 밤의 색이 겹치며 시간의 흐름을 표현한다.
즉 한 장의 프린트로 ‘구름 무늬’를 만드는 방식과 다르다.
투명도가 서로 다른 소재를 겹치고 옷이 움직일 때 각각의 층이 따로 움직이면서 색과 형태가 계속 달라진다.
이번 컬렉션 전체가 한 인물의 여러 시기를 겹치는 방식으로 만들어졌다는 점을 생각하면, 실크를 여러 겹 사용하는 방식 역시 같은 개념을 소재 차원에서 반복한 셈이다.

새는 장식이 아니라 ‘자유’를 설명하는 기호다
쇼 공간 위를 채운 새는 옷에서도 반복된다.
특히 칼새와 제비는 버튼과 주얼리, 자수 같은 작은 디테일로 옮겨졌다.
샤넬 공식 컬렉션 설명 역시 이번 시즌의 중심에 ‘자유’를 두고 있으며, 새는 그 생각을 보여주는 상징 가운데 하나다. 동시에 자유는 단순한 장식보다 옷의 구조와 소재 개발을 통해 표현된다고 설명한다. CHANEL
그래서 이번 시즌의 새를 단순한 봄·여름용 자연 모티프로만 보면 중요한 부분을 놓치게 된다.
옷이 더 가볍고 유연해지고, 트위드에 움직임이 생기고, 단단한 테일러링이 해체되는 과정 전체가 같은 방향을 가리킨다.
가브리엘 샤넬이 실제 사용했던 2.55도 런웨이에 나왔다
83개 룩 가운데 가장 직접적으로 과거와 현재를 연결한 물건은 가방이었다.
첫 번째 룩을 입은 모델 디아니라 후르부셔는 샤넬 Patrimoine 아카이브에서 가져온 가브리엘 샤넬 본인의 2.55 백을 들고 등장했다.
같은 모델은 마지막에도 다시 등장하며 컬렉션의 시작과 끝을 연결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빈티지 디자인을 참고한 새 가방’이 아니라 실제 아카이브 피스가 런웨이에 등장했다는 점이다.
그 주변에는 새로 만든 플랩백들이 이어진다.
시계 체인 형태의 잠금장치를 단 새로운 클래식 백, 시간이 흐른 흔적을 표현한 클라우드 백, 그리고 새장에서 새가 빠져나가는 모습을 형상화한 미노디에르까지 가방 자체가 컬렉션의 시간과 자유라는 주제를 반복한다.
블라지가 샤넬에 온 지 약 1년, 바뀐 것은 ‘코드’보다 사용법이다
블라지가 샤넬에서 처음 선보인 레디투웨어는 2025년 10월 공개한 2026 봄·여름 컬렉션이었다. 샤넬 역시 당시 컬렉션을 그의 첫 시즌이자 하우스의 새로운 장을 여는 작업으로 기록했다. CHANEL
1년 뒤 나온 이번 컬렉션에서 보이는 방향은 비교적 분명하다.
트위드, 2.55, 남성복에서 가져온 테일러링, 가벼운 저지, 자유로운 움직임처럼 샤넬을 구성해온 요소 자체를 없애지는 않는다.
대신 그것을 사용하는 방식을 바꾼다.
트위드는 늘어나고, 정장은 해체되며, 과거의 코르셋은 옷의 흔적으로만 남는다. 아카이브의 실제 2.55는 새로운 가방들과 같은 런웨이를 걷는다.
그래서 2027 봄·여름 컬렉션의 핵심은 ‘샤넬이 완전히 달라졌다’는 데 있지 않다.
과거의 샤넬을 그대로 보존하는 것과 과거를 버리는 것 사이에서, 블라지는 세 번째 방식을 택했다. 코드가 만들어졌던 이유를 다시 찾아 오늘의 소재와 옷으로 작동하게 만드는 방식이다.
83개 룩의 처음과 끝을 가브리엘 샤넬의 실제 2.55가 연결하고, 마지막에 등장한 트위드는 이전보다 더 자유롭게 움직인다.
이번 컬렉션에서 과거는 박제된 아카이브가 아니라 계속 변형되는 재료에 가깝다.
출처 및 참고자료
CHANEL — Spring Summer 2027 공식 컬렉션
CHANEL — Spring Summer 2027 공식 83개 룩
Fédération de la Haute Couture et de la Mode — CHANEL Spring Summer 2027 공식 컬렉션 노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