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잡한 지식을 그림으로 설명한 디자이너, 마리 노이라트와 아이소타이프

복잡한 지식을 그림으로 설명한 디자이너, 마리 노이라트와 아이소타이프

같은 책의 마주 보는 두 페이지에 주전자가 하나씩 놓여 있다. 왼쪽 주전자는 물이 끓으면 소리로 사람을 부르고, 오른쪽 주전자는 과열되면 전기 플러그를 밀어낸다. 마리 노이라트와 아이소타이프 연구소 팀이 만든 《Machines Which Seem to Think》(1954)의 30~31쪽이다. 두 그림을 함께 보면 ‘복잡한 것을 간단하게 그렸다’는 평가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선택이 드러난다. 무엇을 같은 방식으로 보여주고, 어디서 설명 방식을 바꿨을까. 레딩대학교 자료 기반 온라인 전시

마리 노이라트가 맡았던 ‘변환’의 일

마리 노이라트(Marie Neurath, 1898~1986)는 자료를 분석해 글과 그림으로 설명하는 구조를 만드는 ‘트랜스포머’였다. 1920년대 빈에서 오토 노이라트와 협업을 시작했고, 이들이 동료들과 발전시킨 시각 교육 방식은 아이소타이프(Isotype)로 알려졌다. 두 사람은 영국으로 피신한 뒤 1942년 아이소타이프 연구소를 세웠다. 오토가 1945년 사망한 뒤에도 마리는 런던에서 팀을 이끌며 어린이 정보책 제작을 이어갔다.

이 역할을 모든 그림을 혼자 그린 삽화가와 같게 볼 수는 없다. 레딩대학교 연구자 수 워커는 어린이책의 제작에 작가·편집자·삽화가가 함께 참여했으며, 아카이브에 편지와 메모, 스케치, 작은 더미북이 남아 있다고 설명한다. 무엇을 설명할지 정하는 일, 그림과 문장을 배치하는 일, 최종 그림을 제작하는 일이 협업 안에서 연결됐다. 수 워커의 제작 과정 해설

같은 주전자지만 멈추는 주체가 다르다

30쪽의 주전자는 가스불 위에 있다. 몸체를 잘라낸 그림에는 물과 기포가 보이고, 주둥이의 덮개는 노란색으로 강조된다. 아래 문장은 작은 구멍을 통과하는 증기가 휘파람 같은 소리를 낸다고 설명한다. 여기서 소리가 하는 일은 열원을 직접 차단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가스를 끄도록 알리는 것이다.

31쪽의 전기 주전자는 다른 상황을 다룬다. 문장은 물이 거의 다 끓어 없어진 상태에서 출발한다. 발열체가 너무 뜨거워지면 두 금속으로 된 부분이 벌어지고, 풀린 스프링이 플러그를 밀어내 전류를 끊는다고 설명한다. 따라서 이 면을 ‘물이 끓으면 자동으로 꺼지는 오늘날 모든 전기 주전자’의 설명으로 읽으면 범위를 넘는다. 책이 다루는 것은 그림에 제시된 과열 방지 구조다. 1954년 책 30~31쪽 도판과 본문

두 면이 공유하는 것은 주전자의 외형과 내부를 동시에 보여주는 단면도다. 그러나 설명의 끝은 다르다. 왼쪽은 ‘끓음→소리→사람의 대응’으로 이어지고, 오른쪽은 ‘과열→부품의 변화→전기 연결 해제’로 이어진다. 닮은 물건을 나란히 놓았지만 같은 작동을 두 번 설명한 것이 아니다. 사람이 반응해야 하는 장치와 장치 안에서 연결이 끊기는 구조를 비교하도록 읽을 수 있다.

전체 그림만으로 부족한 곳에 두 장면을 더한다

왼쪽 페이지는 큰 주전자 단면 하나가 중심이다. 오른쪽은 큰 단면 아래에 연결부의 두 상태를 따로 놓았다. 첫 그림에서는 전선의 빨간 선이 이어지고, 다음 그림에서는 플러그가 떨어져 틈이 생긴다. 스프링과 오른쪽을 향한 화살표도 이 확대 구간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 배치는 ‘어디에 있는 부품인가’와 ‘어떻게 바뀌는가’를 나눈다. 큰 주전자 그림은 연결부의 위치를 알려주고, 아래의 두 그림은 연결된 상태와 분리된 상태를 비교하게 한다. 전체 단면 하나만 남긴다면 작은 연결부의 전후 차이를 읽기 어렵다. 반대로 확대 그림만 남기면 그 부분이 주전자 전체에서 어디에 해당하는지 찾을 단서가 줄어든다.

레딩대학교의 2019년 해설은 이 책을 일상 사물의 구성 요소로 원리를 설명하는 사례로 소개한다. 여기서 더 구체적으로 볼 점은 확대도를 썼다는 사실 자체가 아니라, 위치 설명과 상태 변화 설명을 서로 다른 크기의 그림에 나눠 맡겼다는 관계다. 왼쪽과 오른쪽의 그림 수가 다른 것도 이 관점에서 읽힌다. 서로 다른 설명 과제를 억지로 같은 틀에 맞추지 않은 것이다. 레딩대학교의 기법 분류 해설

초록은 늘 물이고, 빨강은 늘 불일까

두 페이지에서 노란색은 눈여겨볼 부품에 쓰인다. 왼쪽에서는 주둥이의 덮개, 오른쪽에서는 고리 모양 발열체가 노랗다. 오른쪽 문장은 발열체를 노란색으로 표시했다고 직접 알려준다. 색의 의미를 찾는 단서가 별도의 범례 상자가 아니라 설명문 안에 있는 셈이다.

그렇다고 같은 색이 언제나 같은 물질을 뜻하지는 않는다. 왼쪽의 초록은 물을 채운 영역에 쓰이지만, 오른쪽 연결부 확대도에서는 스프링도 초록이다. 왼쪽 아래 빨간 모양은 가스불이고, 오른쪽 연결부의 빨간 선은 전기 경로를 나타낸다. 초록을 ‘물’, 빨강을 ‘불’로만 외워 두 면에 똑같이 적용하면 그림을 잘못 읽게 된다.

이 도판의 색은 책 전체에서 독립적으로 통용되는 사전이라기보다, 현재 보고 있는 부품과 상태를 구별하는 단서로 작동한다. 특히 오른쪽의 빨간 선은 연결부가 분리된 다음 그림에서 사라진다는 점까지 함께 보아야 한다. 무엇을 칠했는지만이 아니라 무엇을 더는 칠하지 않았는지가 변화의 설명에 참여한다.

문장 역시 그림의 부족함을 뒤늦게 메우는 장식이 아니다. ‘물이 거의 없어진 상태’라는 조건, 금속 부분이 벌어지는 이유, 사람이 가스를 꺼야 한다는 행동은 그림의 색만으로 모두 확정할 수 없다. 그림은 위치와 차이를 펼쳐 보이고, 문장은 그 차이가 생기는 조건과 의미를 정한다.

생략의 성과와 한계를 함께 읽기

이 두 면에는 모든 부품의 치수나 재료별 성능, 온도에 따른 반응 수치가 제시되지 않는다. 주전자를 제작하거나 안전성을 시험하는 도면이 아니라 작동 관계를 설명하는 그림이기 때문이다. 무엇이 빠졌는지 아는 일은 단순화가 틀렸다고 판정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 그림으로 답할 수 있는 질문을 정하기 위해 필요하다.

이렇게 읽으면 마리와 팀의 작업은 ‘그림이 글보다 우월하다’는 주장과 멀어진다. 두 주전자의 닮은 외형을 비교의 출발점으로 삼되, 자동으로 연결이 끊기는 쪽에는 부분 확대와 상태 비교를 더했다. 색만으로 오해할 수 있는 조건은 문장이 제한한다. 페이지가 설명하는 범위와 어린이가 실제로 얼마나 잘 이해했는지는 다른 문제이며, 도판 대조만으로 후자의 효과까지 입증할 수는 없다.

마리 노이라트의 정보 설계를 오늘 읽는 구체적인 방법도 여기에 있다. 단순한 그림인가를 묻기 전에, 전체와 부분은 어떻게 연결되는지, 같은 색의 뜻은 어디까지 유지되는지, 마지막 행동을 사람과 장치 중 누가 하는지 따라가 보는 것이다. 이 두 페이지에서 생략은 정보의 양을 줄이는 기술만이 아니다. 독자가 확인할 관계를 남기면서, 그 관계가 성립하는 조건을 글과 그림 사이에 나누는 편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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